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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수입과자, 국산과자 덮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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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수입과자 코너에서 한 어린이가 과자를 고르고 있다. 수입과자 판매량이 늘어나자 대형마트들은 관련 코너를 확대했다. [최승식 기자]

직장인 송소희(32)씨는 올해 초부터 국산 과자 대신 수입 과자를 사 먹고 있다.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퇴근길에 신촌의 한 수입 과자 전문점을 들러 한두 개씩 주전부리를 고르는 게 습관이 됐다. 송씨는 “좋아하던 국산 과자 가격이 전부 올라 대체품을 찾다가 수입 과자 전문점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며 “가격이 싸고 종류가 다양해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마트에 따르면 국산 과자가 2012년부터 3년 연속 -1.7%, -11.4%, -9.7%의 매출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수입 과자는 9.9%, 12.3%, 11.8%로 매출이 꾸준히 신장되고 있다. 5월 현재 롯데마트의 수입 과자 판매비율은 26.5%로 5년 전(7.5%)보다 비중이 3배 이상 늘었다.

 ‘일방통행식’ 가격 인상이나 횡포에 가까운 제조·판매업체의 행태에 염증이 난 국내 소비자들의 저항이 심상치 않다.

 가격과 효용을 꼼꼼하게 따져 즉시 대체 제품으로 몰리는 것은 물론이고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시장을 뒤져 ‘손품’을 팔아 최저가를 찾아낸다. 크고 비싼 제품을 찾는 대신 필요한 기능만 담은 실속형 제품을 찾는 것도 변화된 소비문화다. 정보가 많고 선택지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신뢰를 잃은 제품은 곧바로 외면당한다.

1000원 싼 PB과자, 53%나 더 팔려

 국산 과자와 수입 과자의 관계 역전이 대표적이다. 수입 과자들은 국산 과자업계가 원가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틈을 타 싼 가격을 무기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국민 과자로 불리는 농심 새우깡은 지난 2월 한 봉(90g)의 가격을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인상했고, 양파링(84g)은 1200원에서 1300원으로 각각 100원씩 올렸다. 롯데제과의 빼빼로도 중량을 42g에서 52g으로 늘리면서 가격을 1200원으로 200원 인상했다. 오리온은 대표 상품인 초코파이 12개 들이 한 상자의 가격을 4000원에서 4800원으로 20% 인상했고, 참붕어빵(116g)의 가격을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올려 ‘고기보다 비싼 과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질소를 사니 과자를 주더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과대 포장도 꾸준히 지적돼 왔으나 국내 업체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새로 생긴 수입 과자 전문점들은 100~200원짜리 낱개 제품부터 국산 과자의 2~3배 용량에 1000~3000원대 제품을 판매해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했다.

 공격적인 가격 할인정책으로 맥주시장을 점령한 수입 맥주도 마찬가지다. 최대 20%씩 할인을 해 국산 맥주와 가격이 같아진 수입 맥주들은 5년 사이에 시장점유율을 10.8%에서 27.8%로 늘렸다. 편의점 CU 관계자는 “아사히캔(500mL)이 2850원, 삿포로캔이 2850원이고 카스와 하이트캔이 2550원”이라며 “국산 맥주가 맛없다는 지적이 계속돼 온 만큼 할인행사 때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를 대량 구매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 추세라면 2~3년 안에 수입 맥주의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마트나 편의점 등이 자체적으로 만든 PB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비슷한 제품인데 가격이 최대 30%까지 저렴해 원제품을 누르는 PB 상품들도 나온다. CU의 PB 상품인 콘칩군은 크라운 콘칩보다 큰 용량과 1000원 저렴한 가격 덕분에 전년 대비 53% 매출이 늘었다. 서울우유의 신장률이 0.9%에 그친 데 반해 CU 우유는 21% 늘었다. 비슷한 제품인데 가격이 500원 저렴하기 때문이다.

빨아 재활용하는 키친타월 매출 6.5% 늘어

 복잡한 기능이 잔뜩 들어 있는 비싼 제품 대신 단순하고 싼 제품을 찾는 것도 똑똑한 소비 추세다. 주부 문혜은(39)씨는 “쓰지도 않는 기능을 잔뜩 넣어 놓고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파는 것을 사면 꼭 후회하게 되더라”며 “최근 집을 이사하면서 핵심 기능만 갖춘 작은 청소기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복합 기능을 갖춘 진공청소기는 매출이 3% 증가했지만 무선 핸디스틱청소기의 매출은 2012년에 전년 대비 8%, 지난해는 16.9% 늘었다. 복합 진공청소기 가격은 10만원대부터 40만원대로 기능이 많아질수록 급격하게 비싸지지만 스틱형 핸디청소기는 4만원대부터 구매가 가능하다. 전자레인지의 경우도 오븐·스팀 기능을 접목시킨 전기오븐레인지 매출은 9.9% 감소한 데 반해 이보다 30~50% 싼 일반 전자레인지는 매출이 2.8% 늘었다. 가스레인지 역시 그릴·건조 등 부가 기능 없이 점화만 가능한 화구 2개 이하의 소형 가스레인지 매출이 지난해 24.6%, 올해 61.7% 증가했다. 화구 3개 이상의 가스레인지 매출이 지난해 22.7%, 올해 14.8% 감소한 것과 상반되는 모양새다. 이마트 관계자는 “최근 비용 대비 효용을 따지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이 늘면서 복잡한 기능 대신 본질적인 쓸모에 초점을 둔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쓸수록 이익이 나는 상품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반 형광등보다 구매가격은 비싸지만 전기요금이 30% 싸고 수명도 긴 발광다이오드(LED) 전구의 판매가 대표적이다. LED 전 구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4%, 올해는 244% 늘어 스마트 소비자의 필수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키친타월 대신 빨아 쓰는 키친타월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6.5% 올랐고, 사용 후 물 세척을 해 재사용할 수 있는 청소용 테이프 클리너는 출시 2개월간 3000여 개가 판매됐다. 이종훈 이마트 마케팅팀장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생기면서 가격 중심형 소비에서 한발 나아가 비교하고 따져 보는 스마트한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알짜형 실속 상품부터 가치 지향형의 상품까지 상품의 스펙트럼을 더욱 세분화해 다양하게 준비하고자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직구하면 반값 … 부품 산 뒤 수입차 수리

 유통채널을 옮겨 손품을 파는 직구족도 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 수입 차 부품이 대표적이다. 현지보다 2배 이상 비싼 부품가와 부르는 게 값인 공임비 때문에 ‘수리비가 웬만한 국산 차 값’이라는 비판을 받던 수입 차도 직구를 통하면 알뜰 수리가 가능하다. 해외 배송대행 업체인 몰테일에 따르면 최근 중국 등 해외 사이트에서 수입 차 부품을 직접 구매한 뒤 국내 정비소에 맡겨 수리하는 알뜰 운전족이 늘었다. 수입 차 부품 직구 사이트에서 벤츠·BMW·폴크스바겐·아우디 등의 엔진오일·사이드미러·와이퍼·브레이크패드·범퍼 등 자동차 부품을 싼값에 구입해 직접 수리점에 맡기는 것이다. 몰테일 관계자는 “직구하면 부품 가격이 절반 이상 저렴해지기도 한다”며 “수입차 동호회를 중심으로 소모성 자동차 부품과 세차용품 직구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직구를 애용한다. 서울 청담동 등 고급 미용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트리트먼트 ‘하호니코 더 라메라메 3단계’ 제품은 국내에서 50만~60만원에 판매되지만 일본 판매가는 1만4280엔으로 약 15만원 선이다. 배송비를 포함해도 20만원에 그쳐 직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몰테일 관계자는 “1분기 일본 전체 배송대행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70% 성장했다”며 “미용 부문이 성장을 견인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50만~300만원인 전기레인지를 400유로(약 58만원)에 사는 ‘독일 직구족’, 혼수용품을 싸게 구입하는 ‘홍콩 직구족’ 등 국가도 점차 다양화하는 추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직구·구매대행의 수입건수는 496만 건, 수입액은 4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52%, 56% 늘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이 가격이나 제품의 질을 꼼꼼하게 비교하고 활발한 정보 공유를 토대로 구매하는 ‘가치소비’가 늘었다”며 “품질이나 서비스 혁신 없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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