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들의 축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아무도 우리를 믿어주지않았다.
집에서는 나를 집안망칠 놈이라고 숫제 내놓은 자식으로 쳤고, 어떻게 소문이났는지 모르지만 같은 동네 어른들은 나만 보이면 재수없는 절 보았을 때처럼 한차례 헛기침을 크게 하고 얼른 외면해 버렸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들은 나를 게으르고 지극히 몽상적이며 전혀 구제할 길이 없는 놈이라 여겼고 같은과 친구들은 아예 나를 머리가 좀 돈놈으로 따돌렸다.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가 나보다 훨씬 심한 편이었다. 집에서는 매일이다시피 쫓겨났고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뿐만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녀가 지나가면 뒤를 따라 오면서 돌팔매질을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늘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그 거리를 방황했다.
그날도 우리는 종일을 걸었다. 온종일을 걷고 지쳐 있었다. 너무 지친 나머지 우리는 절망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리가 아팠고 목이 몹시 말랐다. 입안이 타들어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우리는 물을 움켜먹는 닭처럼 가끔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뽑았다. 그럴 때마다 하늘은 노랗게 보였다. 우리는 쉬고 싶었다. 갈증때문에 더욱 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쉬지 않았다. 종일을 걸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종일 쉬지 않고 걸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란 으레 과로하면 그늘을 찾아쉬는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사람들은, 새란 종일 공중을 날아 다니는 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새는 사람들이 볼 때마다 공중을 날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친 다리를 멈추고, 방금 우리가 지나온 거리를 뒤돌아 보았다. 거리는 땀을 삘삘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의 어디나 그렇지만 쇠의 속살이 썩어내리는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거리가 왜 쇠의 속살이 썩어내리는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하기야 이 항구는 온톰 쇠붙이로 이루어져 있있다. 멀리 태평양으로 인도양으로 뱃길이 트여있는 이 항구에는 막연하고 끝없이 넓은 대양들을 가로질러온 수없이 많은 철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이 항구를 드나드는 비행기며 기차며 쇠붙이 아닌 것이 없었다. 거리의 건물들도 쇠붙이를 뼈대로 삼아 지탱하고있고 심지어는 사람들의 일상 도구까지 쇠붙이 아닌 것이 오히려 드물다. 그렇다면 분명히 그런 현실적인 냄새는 아닐 것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아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흰 유리처럼 창백했다. 더위를 먹은 탓일까, 아니면 너무 지쳤기 때문일까. 내가 우울하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급하게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우욱우욱 토해냈다. 우리가 몇시간 전에 가락국수집에서 먹었던 우동과 노란단무지들일 것이었다. 그녀 앞의 길바닥은 순식간에 그녀의 토사물로 더럽혀졌다. 나는 그녀의 등을 쓸어주었다. 더 나올 것이 없도록 토하고 난 그녀는 침을 모아 뱁으며 자기의 등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핏발이 선 눈에 눈물이 괴어 있었다.
『미안해, 참을 수가 없었어.』
『좀 괜찮아? 우리 어디로 가 좀 쉬어야겠어.』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저쪽에 다방이 있군.』나는 또 한차례 심한 구역질을 참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 거리는 눌 쇠의 속살이 썩어내리는 비릿한 냄새가 충만해 있는 것일까.
하기야 그녀의 말을 빌자면 따로 선명하지 않더라도 거리의 어디에나 그 설명이 널려 있는 셈이었다.
『이 항구에서 가장 큰 것이 뭐게?』언젠가 그녀는 불쑥 그렇게 물었었다. 『글쎄?』
나는 그녀가 가끔 그러듯 좀 엉뚱하지만 설득력은 있는 그런 기발한 생각을 털어놓고 나의 대답을 비양대지나 않을까하여, 글쎄하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었다. 그 때도 우리는 종일을 걸었었다.
그녀는 제신명에 까르르 웃고나더니 아니나 다를까 독의만면하여 말했었다.
『맥주 광고판 있잖아, 시청앞에…
마치 온 항구를 다 취하게 하고도 남을 맥주가 있다는 투의 그 광고판 말이야, 그게 가장 클 껄.』
『그렇던가 !』
듣고보니 과연 그런 것 같았었다. 그 맥주 광고판은 항구의 번화가 입구의 건물 옥상에 우뚝 서 있었는데, 볼 때마다 저것이 저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아심을 갖게 했었다. 낮에는거추장스럽게 큰 덩치를 그냥 거만하게 버티고 있다가 밤만 되면 갑자기 울긋불긋 원색의 불을 교대로 요란스럽게 돌려대는그 광고만은 그녀의 말대로 연과 이 항구에서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항구의 거리는 간밤의 술꾼들이 트해놓은 오물들로 더럽혀져 있었으며 골목마다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서는 죽은 쥐들과 구두창들이 서로 질세라 다투며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일 거리를 헤매다 늘 쉰 곳은 찻집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새삼스럽게 우울해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우리의 처지를 저주하며 우리는 하현달이 지듯이 음침한스리를 지르는 목조계단을 딛고 이층의 찻집으로 올라갔다.
찻집은 어디나 그렇지만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는 담배재처럼 아슬아슬해보이는 일상이, 중년 남녀들의 테이블 위에는 낡은 지전처럼 손때묻은 일상이 각기 한움큼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상들은 나태하게 서로들의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정체된 어떤 자잘한 소리의 찌꺼기가 되어 바닥에 깔리고 있있다. 우리는 이러한 찻집밖에 들어갈 곳이 없는 우리의 처지를 거듭 저주하며 그 일상의 부스러기들을 딛고 의자를 찾아가 앉았다. 우리가 의자에 앉자 우리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도 대뜸 하나의 우유빛 크림처럼 생긴 흔한 일상이 올라앉았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스러워 얼른 손으로 쓸어버렸다.
그녀와 나는 해갈을 한 후에도 한동안이 지나서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기운을 차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웃어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입술이 어색하게 이지리지고 말았다.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고도 또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때 나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적의들을 보았다. 우리가 가 닿는 곳마다 미리 와 기다렸다가 그들의 존재를 꼭 깨닫도록 하고마는 그 적의들은 찻집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 중 어떤 놈은 바로 우리의 발밑에까지 와서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그 적의들은 우리를 향해 쉬지않고 숫돌에 날을 벼르고 있었다. 어느 땐가 가장 적절한 기회를 타 그 적의들은 우리를 덮치리라는 것을 우리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그 적의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완강하다는 깃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또다시 나는 기분이 막막해졌다. 이럴 때 늘 그렇듯 나는 문득 죽어 있는 빌딩이 떠올랐다. 그 빌딩은, 가장 화사한 여름날의 한 낮에도 결코 빛을 반사하지 못하는 우울한 유리창을 양옆에 즐비하게 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 도괴중인 빌딩의 둘레에는 항상 햇빛의 그늘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느 물체들의 그늘과는 달라 햇빛의 그늘은 지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도록 안타깝게 하는 것이다.
『햇빛에 무슨 그늘이 있어!』
언젠가 햇빛의 그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대뜸 그렇게 반박했었다.
『가장 밝은 물체, 예를 들면 유리같은 거 있잖아. 그런 투명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그늘을 보면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을 보는 것 같잖아. 그와 같이 햇빛의 그늘은 더욱 보는 사람을 안스럽게 만들지!』
그 때 나는 그 도괴중인 빌딩에 끊임없이 내려 앉던 햇빛을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언젠가 그 빌딩 옆을 지나는 길에 그 도괴중인 빌딩에 눈이 주어졌을 때 문득 거기에 쏟아지는 햇빛은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빌딩의 이미지 탓인지 나는 햇빛의 그늘을 본 것 같았던 것이다.그 때 나는 결국 그녀에게 햇빛의 그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고 그것이 마음에 부스럼처럼 남아 있었다. 아무튼 나는 기분이 막막할 때면 늘 무너지고 있는 빌딩이 생각나곤 했었다. 십층의 그 빌딩은 허위대는 우람했으나 언제 보아도 외로와 보였다.
잿빛의 하늘을 배경으로도, 멀리 대양으로 이어지는 바다를 배경으로도, 또 등뒤의 산을 배경으로도 외로와 보였다.
검은 빛으로 허위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잔뜩 등을 구부리고 있는 그 빌딩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늘 나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날은 그 도괴중인 빌딩에서 영문 모를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였다. 어떤 날 밤에는 밤새껏 유황빚 불이 밝혀져 있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자살해 버린 그 빌딩의 설계사가 그 비어있는 빌딩안을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이였다.
그렇듯 기초공사의 부실로 건물의 한쪽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비워버린 그 빌딩에 대한 소문이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심심찮게 꼬리룰 물고 항구를 떠돌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빌딩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때는 저것이 언제 무너질까 하는 음험한 기쁨을 동반한 기대 때문에 그렇듯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으나 십여년이나 그 기대를 배신해오는 동안 사람들은 그 기대가 허망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사람들의 일상의 사물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초점을 모으지 않고 망연히 맞은편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얇고 예쁜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늘 윤기가 흐르고 싱싱했으나 입을 맞출 때는 더욱 탄력이 생기고 붉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슬쩍 스치기만해도 풀썩 먼지를 내며 쓰러질 것처럼 메말라 있었다. 얼굴은 정처없이 먼길을 나선 사람의 우수를 담고 있었다.
『오늘, 우리의 크로절랜드에 가볼까? 어때?』
그녀는 지금까지의 표정을 풀어버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기심에 볼이 닿으면 으례 짓는 표정이다. 그녀의 힘을 준 듯 솟은 콧날이 낮아보이는 유일한 표정이다.
『크로컬랜드가 어디야?』
『전에 내가 이야기 했었잖아.』『크로컬탠드? 크로컬괜드? 그린 얘기 들은 적 없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크로걸랜드를 모른다구? 아니, 그 이십세기 최대의 희극적인 탐험마리야.』
그녀의 말투에서 나는 그녀가 이제 꽤 기운을 회복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아직도 나만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제 몇분동안이나마 우리 밖의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이 즐거웠다.
『그러니까 그것은 십구세기초, 신대륙에서 일어났던 일이야.』
『그래 십구세기니, 신대륙이니, 나는 그런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 같은 말과 관련 있는 것은 몇가지 밖에 알고있지 못해.』
『그렇다면 아직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었군! 그럼 들어봐, 재밌을걸.』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십세기 최대의 난센스를, 그러나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십수세기 초엽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멀리 남아메리카를 우회하여 항해해야만했으니 어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미국은 물론이려니와 영국에서까지도 새로운 북대서양 항로를 개척하려고 여간 부심하지 않았다. 그 무렵, 탐험가로서 꽤 세상에 알려져 있던 영국의 로스형제가 북아메리카의 북쪽 해안을 따라 대서앙에서 태평양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항로를 개척하려고 탐험에 나섰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기지를 떠나 북쪽으로 불과 몇시간 밖에 항해하지 않았을때 바다가 끝나고 엄청나게 큰 산이 항로를 가르막고 있어 되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뭐 그렇게 케케묵은 옛날 얘기니!』
『글세, 그게 아니야.다 듣고나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그런데 십구세기말경, 이번에는 극지탐험에 성공해 명성을 얻은 피어리 제독이 또 그북대서양 항로를 개척하려고 나섰던 거야. 그렇지만 그도 역시 예의 그 산이 항로를 가로막고 있어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지. 그리고 항로개척을 단념하고 그 산이 있는 땅을 크로컬랜드라 이름짓고 지도에도 올렸대지 아마, 그런데 정작 희극은 그 일이 있고서도 수십년 후에 벌어졌던 거야.』
『공도정책을 썼구나?』그녀가 얼른 이야기에 뛰어들었다.
『아니면 원주민이 있었거나.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었잖아. 한때 울릉드에 공도정책을 쓰다가 또 대마도처럼 도둑맞을 뻔했었잖아-, 』
『그런게 아냐. 미국의 맥밀런이란 친구가 탐험대를 조직하여 그 크로킬랜드 탐험에 나섰을 때의 일이야. 그들은 관계당국의 지원을 받아 처녀지 탐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드디어 디데이를 맞아 아침 일찍 기지를 출발했지. 그리고 대여섯 시간을 항해하여 드디어 그 처녀지를 볼 수 있었어. 그때 맥밀런이란 친구를 위시해 그 대원들은 하나같이 환성을 질렀섰지. 그리고 빙해를 더 항해할 수 없게되자 탐험선을 정박시켜 두고 그들은 빙판 위에 상륙하여 크로컬탠드를 향해 도보행군을 시작했던 거야. 그런데 금방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그 처녀지는 가도 가도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어. 하지만 대원들은 하나 같이 기대에 들떠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거지. 빙상의 해질무렵의 그 이상스런 고요 속을 끝없이 행군했을 그들의 모습을 한번 상상이라도 해봐. 그들이 더는 행군을 계속하지 못할 지경으로 지쳤을 무렵 서쪽빙만너머로 해가 꼴깍 넘어가고 말았어. 그와 때를 같이하여 어찌된 영문인지 사방이 망망하게 트여버렸던거야. 탐험대원들은 망연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머 입을 딱 벌릴 수밖에. 그렇듯 웅장하던 크로킬랜드가 별안간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그리고 그들은 북극의 허허로운 빙만 한가운데에 버려져 있었으니…. 갑자기 미아들이 된 그들은 아직도 시야가 닿는 곳은 다 분벌이 되었는네 그렇듯 가슴 부풀게하던 그 처녀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빙해만 시야 끝간데까지 펼쳐져 있었던거야. 그 때 그들은 배로 돌아갈기운마저 잃고 서로의 얼굴만 넋나간둣 쳐다보았겠지. 그것은 그 일이 일어났던 훨씬 후에 알려진 것이지만 태양빛의 복사에 의한 신기루였대나.』
『아니,그럼 신기루를 지도에다 그러넣었게!』
재미있다는 듯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입김을 후우 불어낼 때 하듯이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그것은 그녀가 놀라운 일을 보거나 당할 때 늘 보이는 그녀의 습관 중의 하나였다.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
『그리고 그들은 외국에 대해 크로켠랜드의 영토권을 주장했을거 아냐?』
『물론 그랬을테지.』
그녀는 더 참을 수 없었던지 몸을 비틀며 웃어댔다. 그리고 웃음을 그치더니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멋있어! 우리 나라에도 그런 곳이 좀 있었으면……』
『글쎄, 있다면 그곳은 전적으로 너와 나의 소유가 될 수 있을 걸!』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설령 우리가 공공연히 소유권을 주장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소유권 시비를 할 사람은 없을거구!』
『그렇지, 우리가 소유권을 주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테니까.』
우리는 그렇게 말한 후 마주보고 쓸쓸히 웃었다.
『그런데,아까 그랬었잖아. 우리의 크로컬랜드에 가자고? 거기가 어디야?』그녀는 새삼스럽게 아까의 나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알잖아, 그 ……. 』『또 능청이야. 어서 시원하게 털어놔.』『어둠의 집 말이야. 떠다니는 집이라는 편이 더 나을까!』
『아! 그 H공사였던 빌딩말이구나. 우울하게 상을 찌푸린 그 무더지는 빌딩!』『그래, 그 빌딩은 바다를 굽어보고 있지. 모든 세계의 땅덩이와 연곁되어 있는 바다를….』
『온세상을 다 돌아다니던 바람이 지치면 그 빌딩의 맨 꼭대기에 앉아 다리를 쉬던데!』
『아니, 그럼 나보다 훨씬 더 관심을 갖고 있었군.』
『그 때, 나는 그 빌딩이 곧 우리의 크로컬랜드라는데 동의하겠어. 그러니까 오늘 우리 그 빌딩에 들어가 보자는 거지?』
그녀의 눈이 또 반짝였다.
그녀의 눈,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신체의 중요부분중 핵심인 그 눈이 광채를 내고 있었다.위험을 동반한 기대가 스며있는 때문인지 그 광채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어둡게 반짝일 때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 나는 줄곧 그 빌딩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 빌딤이 무너질 날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꾸 들고… 웬일인지 모르겠어. 우리가 너무 외로운 탓인지, 아니민 너무 피로한 탓인지-.』
『아뭏든 결정한거지? 운만 좋으면 함께 무너질 수도 있을거구. 또 소문처럼 그 자살한빌딩의 설계사도 만날 수 있을는지 알 수 있어?』
그녀는 신명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며 나는 도리어 우울해졌다. 왜 우리는 여느 사람들이 기쁨의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을 멸시하고 오히려 그들이 재난으로나 알 그런일을 가지고 신명을 내야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녀는 여느 사람들이 결코 기쁨을 찾아낼 수 없는 그런 일로 최상의 기쁨을 즐기고 있지않은가.
한때 항구에는 스물아홉살이었던 그빌딩 설계사의 자살사건이 대단한 화제가 되었었다. 그 소문은 날이 거듭될수룩 꼬리를 쳐서, 어떤 여자들은 사실보다 훨씬 미화된 그 소문을 듣고 그 설계사를 연연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옛날 이야기일 뿐 어쩌다 지나는 길에 그 빌딩이 시야에 들어오면, 저것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군'하는 정도로 지나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매축지가 되어 지하깊숙이 파헤쳐 암반을 찾아 기둥을 세워야하는데 지용(지층)에 있던 바위를 암석인 줄 잘못 알고 기둥을 세워 그부분이·건물의 하중을 견디지못해 꺼져들면서 빌딩에 금이 가고 마침내 도괴할 위험이 따르자 그 빌딩을 비우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후, 그 젊은 설계사는 퉁퉁 부은 시체로 대한해협쪽의 해변에 표류해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비록 상상으로지만 그 빌딩을 배회하는 설계사를 본 것 같았었다. 그 때문인지 그 빌딩은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 빌딩은 철거하지 않고 버려둘까? 무너질거라는 소문이야오랬잖아.』『글쌔, 여러가지 소문이 있더군. 시공자측이 망해버려 배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또 철거 비용이 엄청나 저절로 무너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도 있고....』
『오늘, 우리가 들어가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면…』
글쎄, 그러면 오죽 좋으랴.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 지금까지 우리가 막연히 찾아헤매던 것과 비로소 만나게 될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기대 때문에 가슴이 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 이 세상은 끝장이겠지.』『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죽어버리는 거지! 아닌가? 우리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다 얼른 말을 그치고 입을 동그랗게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후 그녀는 확신이 섰다는 투로「아닐거야. 이 세상 모두가 끝장나는 것일거야」하고 그녀는 끊고 맺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저도 모르게 동시에 아-아 소리를 지르고 갑자기 볼에 멘 것 처럼 입을 다뭍었다. 그리고 서로 어색한 기분으로 묵묵히 천장을 쳐다보았다. 별안간 우리의 귀에는 피로에 지친 바다의 음향이, 지구가 온통 묘지로 뒤덮일 날 문득 불어올 바람소리가 쟁쟁 울려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세상이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들 것 같은 적막감에 사로잡혔다.
얼마후, 우리는 괜스리 자신들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을 후회하며 어깨를 축늘어뜨리고 찻점을 나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버스를 탈 수 있는 몇닢의 동전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한낱 끊임 없는 반복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 반복에 지쳐 있었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억지로 이끌어가는 모든 반복들에 지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믿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자신들도 언젠가는 모르는 사이에 그 반복들에 설득되어질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 때는 꽤 나이도 들어있을테지.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자꾸만 위축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거리에는 아직도 더위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시청앞의 맥주 광고만은 벌써 빨강 글자. 파랑 글자를 분주히 번갈아가며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항구가 얼마만큼 취해야 저것은 자기의 소임을 다 했느라고 은퇴하게 될까. 사람들은 더위를 술병처럼 허리에다 차고 거리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동안 잊고 있었던 적의들이 거리의 이구석 처구석에서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것을 보았다. 그적의들은 쇠의 속살이 썩어 내리는 비릿한 냄새와 어울려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려 물었다. 어둠은 아직 자리를 정하지못하고 길바닥을 슬금슬금 기어다녔다. 하지만 미구에 완장한 어눔의 막을 치리라.
우리는 어느 나라 공보원의 건물을 끼고 돌았다.
회색의 동체에, 옆구리에, 창틀에 하얀페인트 칠을 한 창문을 여러개 달고 있는 키가 너지막하고 굉퍼짐한 그 건물은 한때 우리와 친했었다.
금연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책꽂이의 책을 제외한 모든 것이 미색으로 정결하여 범접하기 어렵던 도서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우리는 일장 이장의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물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데, 언젠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시달리는 땅의 숨소리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듣기 위해 장소를 역광장으로 잡아 하룻밤을 새울 일을 모의했던 곳이 바로 이 공보원의 도서실이었다.
그 때가 아마 봄이었을 것이다. 추위와 더위로 계절을 구분할 수 밖에 없는 항구에서는 봄과 가을은 거의 느낄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때가 춥지도 그렇다고 덥지도 않았오니 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역 광장의, 정지해 있는 분수대 옆에 누워 땅에다 귀를 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소리는 들러지 않았다. 우리는 그러나 단념하지 않고 우리 옆을 지나가는 승객들의 발을 쳐다보며 땅에서 귀를 떼지 않았다. 얼마를 견딘후 그녀는「기계들이 내는 소리 매문에 땅이 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땅의 숨결 소리가-」 하고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그럴거야, 방금 생각났는데, 한밤중이라도 이 항구에서는 땅의 숨결소리를 들을 수 없을 거야. 비록 쉬고 있을 때라도 기계들은 수근거리니까.』
『그럼 뭘 한다지. 저 별들이나 헤아릴까.』
『싱겁긴.』
나는 그녀에게 괸잔을 주었다●
『저렇듯 별이 많아도 누군가에게 한번은 별하나 나하나에 지목되었을 거아냐.』
『그랬겠군! 아직 나를 위해 남아있는 별은 없겠어.』
그녀는 또 투덜거렸다.
우리는 광장에 누워 그런 말을 주고 받았었다. 그날 밤, 우리는 자정 훨씬 지나서야 겨우 다소곳한 밤을 누릴 수 있었다. 자정 무렵, 막차로부터 내린 승객들이 우리의 옆을 부산히 지나가고, 그 다음 역사의 불이 하나 둘 어둠속으로 찾아 들고, 그리고 손님들을 꾀던 거리의 장사치들의 불이 하나 들 죽고난 후 비로소 고즈넉한 밤을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밤중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귀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묘한 울음소리 같은 걸 들었기 때문이었다. 환청인지는 앝 수 없으나 분명히 어떤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우리는 그 울음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낮이면 그렇듯 뻔뻔스럽고 태연하던 항구가, 속은 비록 썩어갈지라도 맥주 광고만을 돌돌돌 굴리며 의젓하던 항구가 새벽이면 아무도 모르게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어둠의 신하들만 기거하는 우리의 크로컬랜드 앞에 이르렀다.
우리는 거리를 지나으면서 몇번이나 우리의 옆을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버스 안의 평화스러운 미이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둣 태연스럽고 완벽한 주검들 사이에 끼이지 못한 우리를 생각하며 쓸쓸해졌고 그 때문에 우리는 풀이 죽어 묵묵히 거리를 지나왔었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올라온 소금기섞인 바람에 점점 식어가고 있는 부둣길을 지나오던 길에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 여섯개들이 양초 한봉지와 성냥 한팍을 샀다. 그녀는 초컬리트도 샀다. 우리는 나눠먹었다. 그 구멍가게를 지나자 행인이 뜸했다. 그 일대는 걸조망이 쳐진 부두의 야적장이었다. 일반인의 통제구역이 많고 또 십차선이 넘는 철길이 시내와의 사이에 가로놓여있었기때문에 낮에도 사람이 뜸한 편이었다.
길과 야적강을 경계지은 철조망을 따라 듬성듬성 경비등이 서었었으며 주위는 음산스러웠다. 야적장앞의 부두에는 대양을 건너왔을 우람한 철선이 하역작업을 중단하고 몇개의 표지등을 단 채 한가롭게 정박해 있었고 항내 여기저기에 그렇듯 우람스런 철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곧 도괴할둣한 빌딩의 둘레에는 거추장스러워 보아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그 철조망에는 해골을 그려넣은 북은 위험표지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철조망은 가설된지 오랜 때문인지 군데군데 끊어졌거나 넘어져 있었다. 철조망 역시 그 빌딩처럼 아무도 들보고 있지않는 모양이었다. 야적장의 경비등과 시내의 줄곧 공중으로 부상하는 듯한 여뎡에간신히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십층의 빌딩은 도괴할듯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보잘 것 없는 녀석들이라는 듯이 육중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철조망이 쓰러져있는 곳을 찾아 그 곳을 지나 빌딩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철조망을 지나자 빌딩으로 뛰어 가더니 외벽에다 귀를 바싹 가져다붙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빌딩에다 귀룰 가져다 됐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으나 확인하려고드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빌딩은 모든 소리르 안에다 감추고 묵묵히 서있기만 했다.
우리는 빌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다. 그러나 빌딩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 문마다 굵은 못을 박은X자의 나무가 버티고 있었고 그 안에는 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에 시달리고 또 세월이 딛고가며 남긴 자국 때문에 손만 대면 곧 어떻게 될 것 같았으나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도록 완강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빌딩을 한바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셔터가 중간쯤까지 밖에 내려와 있지 않은 문을 찾아냈다. X자의 나무가 버티고는있었지만 안의 유리문을 밀어보니 별로저항없이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아마 셔터가 내려지지 않아 그만 버려두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X자를 타넘어 서로 도우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들리지?』
나는 그녀의 귀에다 대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었다. 우리는 지난 십여년간 빌딩에서 살아온 어둠과 소음이 속삭이는 들리지 않는 아우성을 들었더 것이다. 어느날의 꽃밭에서 들을수 있던 그런 정적의 외침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정적은 항상 오랜 발성연습 끝에 그들이 떨 수 있는 최장의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정적의 외침소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초에다 불을 붙여 각기 한자루씩 들었다. 불을 밝히자 별안간 어둠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리그 금방 귀신이라도 튀어나을듯한 복도를 몇 발짝 옮기자 어둠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우리에게 자리를 내놓았다.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문들이 있고 문 위에는 먼지 앉은 표찰들이 달려있었다. 총무과, 근해과, 검사실... 그 표찰들은 이미 소임을 잃은 줄 알고 있는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풀이 죽어 있었다.
어디선가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기차가 출발하며 으례 관습적으로 올려보는 기적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 늦게 귀소하는 물새가 다급하게 성대를 울려보는 그런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음향들에 귀를 내놓은채 우리는 충무과의 표찰이 불은 방문앞에 섰다. 그녀와 나는 서로를 확인하듯 쳐다본 후 그 방의 문을 열어보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리고 텅빈 내부를 보여주었다. 다른 방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은 열 때마다 스스럼없이 그 안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한 점의 집물도 없는 방안은 네모반듯하게 휀뎅그렇기만 했다. 그리고 방마다 마치 협심증 환자들의 가슴처럼 답답스런 소음들만 쌓여 있다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어디선가 불쑥 그 젊은설계사라도 튀어나올까 가슴을 두근거리며 방문을 열었으나 번번이 허탕이었다. 우리는 이층에서 마침내 볼 것을 보았다. 일층에서는 우리가 들어간 쪽이었기 때문에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그곳을 지나쳤지만, 이층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슴 졸이며찾던 봄과 만났고 건물이 도괴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틈은 손바닥을 편채 넣을 수 있는 넓이였다. 두갈레, 세갈래, 어떤 데는 열갈래쯤으로 틈을 열고 있었고 그 틈마다 철근이 드러나 보였다. 그 틈을 따라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그리고 반대편 벽에서 또 바닥으로 그렇게 한바퀴 살펴보던 그녀는 펄썩 주저앉으며 그 틈들을 어루만졌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은 시멘트가루로 지저분해졌고 어느새 흐르는 눈물을 닦았는지 그 얼굴도 역시 시멘트 가루로 엉망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겨울 바람이 세차게 부는 빈 들에 서있는 허수아비 같았다. 자칫 바람이 드세지면 몇 백년을 풍화되어온 장승처림 풀썩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거기에 영 주저앉을 것 같은 그녀를 이끌고 삼층으로 올라갔다. 이러한사정을 알 턱이 없는 어둠들은 여전히 우리의 앞뒤를 돌며 부산을 떨었다.
삼층에서도 그녀는 틈과만나자 또 풀썩 쓰러졌다. 삼층의 것은 이층의 것보다 더 넓었다. 그리고 여러 갈래의 틈들은 또 여러 갈래의 작은 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여기저기 어루만지던 그녀는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옛날 호환을 입은 아기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저랬을까. .
세 아들이 쓰러져 있을 전쟁터를 헤매며 시체나마 수습하려던 늙은 어머니의 넋두리가 저랬을까. 아무튼 여자들만이 가진 그런 본능적인 애절한 넋두리였다.
오층에 올라 갔을때 나는 바다를 내다볼 수 있었다. 바다는 먼지가 잔뜩 끼어있었다. 믿기어려운 일이었지만 바다가 죽어있었던 것이다. 검은 바다위의 선박들은 사현대에 목을 매달고 초조하게 정박해 있었다. 그렇듯 출항의 기회룰 잃은 선박들 위에는 하염없이 먼지만 쌓여갈 것 같았다.
『죽어 있는 바다!』
의아스러워 나는 입속으로 그렇게 뇌어보았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바다는 언제보아도 살아 꿈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십층에 당도했다. 나는그녀를 부축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틈은 위로 갈 수록 너 넓어졌다. 그녀의 넋두리는 갈수록 모호한 신음으로 변해갔다. 빌딩은 아무 것도 숨기려 들지않았다. 순하게 배포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줄기차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조금도 감추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십층에 올라가 틈이 벌어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나의 가슴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풀고 무너져내렸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주저 앉았다. 능히 한뼘은 되어보이는 틈은 앙상하게 철근을 드러내 보였고 그 틈으로 아래층이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들쑥날쓱하여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계속 혀를 내어 입술을 축였고 목이 타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았다. 나는 그녀의 눈빛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는지 숨막힌 듯 불안스런 예감으로 몸을 떨었다‥
이 틈은 처음 실날같이 시작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날이 그 간격을 넓혀 왔을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렇듯 한뼘의 넓이로 벌어졌을 것이었다. 문득 그 설계사가 떠올랐다. 그는 매일자기의 꿈을 고스란히 묻어 놓은 이곳에 와서 스스로 피를 말려 갔으리라.
그가 죽는 날까지 매일 자신의 명을 한치씩 잘라가면서 틈을 재었을 것이리라. 그리고 자기의 꿈이 하나하나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안스러우면 바다를 내다보았을 것이리라.
바다는 항상 마음 아픈 사람들을 적절히 배신할 줄 알고 있으니까. 그 스물 아홉 살의 설계사는 그 바다의 배신을 속속들이 체험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는 남아있던 네 자루의 초에다 불을 붙인 다음 여기저기 틈안을 밝히자 방안이 아픈 모습이 좀더 분명해졌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틈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도시의 부음히 떠오르는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때문인지 별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못볼 것을 훔쳐본 것 같았다. 자신의 두쪽 난 몸이 연상되었다. 그 조개진 틈사이로 다른 물체가 보인다. 그 조개진 몸에는 이미 생명이 자리 잡을 곳이 없는 것이다. 얼른 시선을 뗐다. 놀란둣 창쪽을 보았다. 창문도 뒤틀려 있었다. 유리들이 혹은 떨어지고 혹은 깨진채 반쯤 불어있기도 하고….
그녀는 촛불 앞에 무릎을 꿇고 단정히 손을 모아 앉았다.
『우리는 지금, 당신이 남겨두고 간, 떠나려는 빌딩에 와 있습니다. 당신은 용서할 줄 믿습니다. 당신이 남겨둔 삶을 대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 부끄러움을 우리는 허락된 목숨이 갖는 치사한 자유보다 꿈이 갖는 구속을 택한 당신을 추모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썩어가는 거리를 피해 당신이 남긴 신선한 이곳에 와 당신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는 이 빌딤의 도괴와 함께 기꺼이 무너질 수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밤 우리가 이 빌딩과 함께 무너지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날 기필코 우리의 손으로 이 빌딩을 무너지게하여당신의아픔을 끝나게 해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문득 해일이 일고 있었다. 폭풍을 이기지 못한 바닷새들이 떨어져 해일에 흽쓸리고 있었다. 아니 까마귀가 날고 있었다. 겨울 보리밭 위에 까마귀가 날아오르며 불길하게 울고 있었다. 정적이 싸이고 있었다 .태풍의 중심지 같은 정적적이 싸이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짙은 갈색빛의 귀뚜라미가 한놈 나타났다. 이놈은 밤만되면 이 건물의 내력을, 그 내력에 알맞는 성대로 노래할 것이었다. 그 놈이 촛불 옆으로 풀썩 뛰어올랐다. 연약만 다리와는 반대로몸토은 단단해 보였다. 우리를 위식하고 있는 것인지 중간부분까지 검은 무늬의 띠를 감고 있는 뒷다리를 팽팽하게 당겨 금방 뛸 듯 긴장해 있었다. 놈을 자세히 보는 더듬이 한쪽이 없었다. 남아 있는 외짝의 더듬이를 시종 전후좌우로 혼들어대고 있었다. 분명 어느쪽으로 뛰어야 안전한가를 궁리하며 망설이고있는 것은 더듬이가 한쪽 뿐이기 때문일것이었다. 놈은 마침내 풀쩍 뛰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틈 사이로 뛰어들고 말았다. 철근에 다리를 견치고 바둥대는걸 손으로 건지려 했으나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놈은 틈 사이로 추락하여 모습을 완전히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도 귀뚜라미를 보고 있었던지 귀뚜라미가 모습을 감추고나자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그녀가 끄는대로 틈을 건넜고, 그녀가 하는대로 따라 앉았다. 만약 빌딩이 지금 무너진다면 우리가 앉아있는 쪽이 먼저 떨어져 나가며 부너질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홀렀을까. 나는 갈증때문에 견딜수가 없없다. 입안에는 침도 괴지 않았다. 목젖을 축이려고 침을 모았으나 숨만가빠올랐다. 뚜뚜묵, 어디선가 또 무엇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또 틈이 좀 더 벌어졌으리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술은 나뭇잎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우리는 무엇에 쫓긴듯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서로의 입술읕 찾았다. 또 한차례 충격적인 파얼음이 우리의 가슴을 길게 울렸다. 별안간 그녀의 얼굴이 먼 과거처럼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외쳐부르고 싶었지만 그래지지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더욱 힘주어 부등켜 안았다. 그녀도 필사적으로 나에게 매달렸다. 우리는 또 한차례 길고 우울한 파열음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헤쳤다. 그녀도 나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 우리는 알몸이 되었으며 땀으로 흠뻑 젔었고먼지 위를 마구 뒹굴어 전신이 먼지무성이였다. 우리는 무엇에 쫓긴 듯 다급하게 서로를 찾았다. 또 한차례의 파열음이 전류처럼 우리의 핏즐을 타고 홀렀다. 뜨거운 행위가 끝났을 때 우리는 막막한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몽롱한 가운데서도 나는 그 허탈감이 어떤 치유불능의 병균처럼 우리의 세포속에 자리를 굳혀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다를 보면, 마음 아픈 사람들을 적절히 배신하는 바다를 보면 좀 나아질까.
머릿속에 서서히 검정이 주조를 이룬 그림이 펄쳐져 갔다. 까마귀가 날고있는 음산스런 그림이었다. 나는 기를 쓰고 그 검정 그림을 지우러 했지만 허사있다. 자꾸 멀어져가는 그녀를 붙들고 싶었지만 마음 뿐이있다. 까마귀가 푸드득 날아 올랐다. 지진이 지나간 도시의거리를 고양이가 한마리 뷸길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얼굴이 예순살의 노파로 보였다. 그녀는 자기의 늙고 추한 얼굴을 부끄러워 했다. 그녀는다산모처럼 주름투성이인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마구 손을 흔들었다.
얼마나 또 시간이 흘렀을까. 빌덩이 덜컹 움직이는 서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 나는 순간 수치심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어느 사이에 건너갔는지 나는 좀더 안전한 쪽에서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안전한 쪽에서 무엇을 붙들려는 듯 양팔을 허우걱거리는 자세로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고 다시 위험한 쪽으로 건너왔다.
우리는 아침까지 몇번이나 그 짓을 되풀이 했다.
아침에 나는 너무 눈이 부셔 정신을차렸다. 얼떨떨했다. 우리는 둘 다 알몸이었고 눈부신 햇빛을 받고 있었으며 둘 다 안전한 쪽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빌딩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했다. 틈은 벌어진 입을 더벌리고 있었으나 그것은 아무 감흥 없는 한 사실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눈을 뜬 그녀는 나의 몸으로 경황없이 뛰어들며
『우리 지금 살아 있는 거지?』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었다.
며칠후, 드디어 그 빌딩이 무너졌다. 남쪽 부분, 그러니까 건물의 삼분의 일 틈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그 진상을 알턱이 없는 항구의 시민들은 그 건물이 때가 되어 자연히 무너졌으리라고 예사로 보아 넘졌다. <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