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기업 저축능력 북돋워야|설비투자지원 정책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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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각료들이 최근 잇달아 발표한 새해 정책구상도는 대체로 하나의 전제에 합의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년에는 더 이상의 축소균형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판단이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다. 그런 판단의 바탕에는 물론 경제 외적 고려도 포함될 수 있으나 투자·소비 등 실물경제의 최근 지표들도 상당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실물경제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투자 부진과 내외 수요간의 불균형이 크게 심화된 점이다. 76년만 해도 연율 22.2%에 이르렀던 국내 수요증가율이 올해는 겨우 8%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이정도의 저조한 내수 증가율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경기 침체 국면을 반영한다.
이런 부진한 내수로도 10%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자만의 자료로서만 받아들어서는 안된다. 그만큼 올해 경제는 불균형·부조화 속에서 이끌어져 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30%나 늘어난 해외 수요의 언덕이 있지만 경제의 안전도란 측면에서 볼 때 내외 부문간의 불균형 확대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1백억 「달러」수출을 달성하고서도 국내경기는 제조업의 부진, 투자의 침체 등 불황의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제 각료둘이 입을 모아 민간투자 확대, 내수산업 지원을 약속한 사실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내수·투자의 부진으로 올해 성장률이 11%에 불과한 제조업의 경우 일부 수출 산업까지 포함하여 거의 시설 능력이 한계에 와 있다.
문제는 고투자의 부담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며 최종수요는 어떤 수단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전자는 투자재원의 조달과 배분에 관련되며 후자는 주로 재정 계획과 유관하다.
통화부국이 「능동적 통화정책」을 내세우고 통화 공급에 신축성르 가지겠다는 의도는 일단 내수 산업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정책 천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4%라는 낮은 총 저충률 수준 아래서 이루어질 투자지원은 통화 「인플레」를 수반하거나 해외저축율을 높이지 않는 한 스스로 한계를 갖고 있다.
더우기 해외부문을 통한 통화증발 때문에 해외 금융을 과감하게 국내 금융으로 대체해야할 처지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결국 투자재원의 비 「인플레」적 조달이라는 내년 정책과제는 통화당국만 더욱 곤경에 빠뜨리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오직 가능한 선택은 재정에서 투자를 지원하든가 내자 동원체제를 획기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나 이는 현재의 여건으로 보아 어느쪽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저축 증대 노력이 내년에는 더욱 강화되겠지만 가계 저축이 비록 성과를 거둔다 해도 현재의 「인플레」추세에서 총 저축율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안이하게 과거처럼 다시 해외 저축의존으로 치닫고 싶은 유혹이 더욱 높아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통화관리는 더욱 「딜레머」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간 투자의 획기적인 증대는 이처럼 당면한 국제수지·통화의 측면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민간기업의 저축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장기대책이 마련된다면 정부의 이런 부담은 크게 덜어질 수 있다. 조세나 행정에서 사내유보를 적극 유도하고 전반적인 시장 이자율을 장기적으로 안정시켜 급증하는 배상 압력도 줄이고 투자수익율도 보전시키는 노력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렇게보면 민간투자의 확대도 결국은 무분별한 확대 정책에 의존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안정기조의 바탕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김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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