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정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한 달은 참으로 대형 사고도 많았다. 지난달 11일의 이리역 폭발 참사에 이어 장성 탄광 사고, 동해 어선 조난 사고 등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이러한 대형 사고의 연발은 우리 사회의 고도 성장 위주 기조에 대한 어떤 위기감마저 자아냈던 것이 사실이다.
6일에 열린 안전 사고 대책에 관한 관계 장관 회의는 이러한 심각한 국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자각의 반영이라 하겠다.
재난은 괴로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 재난을 앞으로의 더 큰 재난예 방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사회는 장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에 연발된 대형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여 재발 방지책을 서둘러 강구함으로써 이 사회의 존립과 발전의 기틀을 다져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그것을 특정 사고에 국한해 미친 적으로 보느냐,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거친 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결론의 차원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특정 사고의 구체적 원인을 미시적으로만 보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인적·물적인 주의와 대비의 해태로 유발된 것이 된다.
이리 화약 폭발 사고도 화약 화차 호송인이 안 탔더라면, 또는 탔더라도 불조심만 했더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식이다.
그러나 사고 빈발이란 현장을 거시적으로 파악하면 그렇게 단순 논리일 수는 없다. 열차로 화약을 수송하는데 취급자들이 전체적으로 그토록이나 안전 의식이 결여되었으면 결국 사고 개연성이 잠재했다고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관점에서는 최근의 연발 사고도 단순히 개별 사고의 집적이라기 보다는 사고의 위험성이 전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의 필연적인 산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의 고도 성장과 사회의 개발로 인구의 집중·생산 방식·운송 수단·물량 등 우리 사회의 외형과 밀도는 급격히 커졌다. 이에 따라 대형 사고의 위험도 급속히 늘어났다.
이곳 저곳에 즐비한 고층 건물·대규모 생산 시설·대량 운송 수단·밀집한 도심·주유소·「가스·스테이션」·유조차 등 모두 10여년 전만 해도 드물었던 대형 사고의 위험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 요인의 급속한 성장에 비해 일반의 안전의식이나 사회적 안전 장치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문제다.
바로 이 성장과 안전의 파행이 대형 사고의 구조적 바탕이다.
이러한 파행 구조의 개혁이 무엇보다 급선무로서 이를 위해선 우선 정치와 정책의 조정 능력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성장 위주의 정책 기조를 안전·공해·균형·「모럴」 같은 질적인 측면과 조화시키려면 정책의 중점이 조정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전문 연구 기관을 두어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 안전 관련 법규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나 성장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키지 않는 정책기조가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장이 약간 둔화되는 한이 있더라도 안전 시설·장비에 대한 투자와 안전 요원의 훈련, 그리고 안전 의식의 제고 등이 중시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안전 법규와 수칙들은 경비만 해놓을 것이 아니라 꾸준한 행정 지도와 계몽으로 철저히 준수, 생활화되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성장과 안전이 초과된 이러한 정책 방향 아래서 기업이 안전 투자를 늘리고, 전 국민이 안전을 생활화해 가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구조적 사고 위험으로부터 해방될 기틀을 마련하게 되지 않겠는가. 안전 사고에 대한 최근 정부의 모처럼의 높은 관심이 아무쪼록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