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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 보헤미안 처럼 사는 앤서니 김, LPGA 떠난 뒤 랭킹 추락 신지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5호 23면

신지애(26)와 교포 앤서니 김(29·미국)만큼 개성 있는 캐릭터는 흔치 않다.

잘 나가던 스타, 지금은

신지애는 만화 주인공 독고탁 같았다. 스포츠를 통해 세상과 맞서 싸운 독고탁은 어머니를 가슴에 묻은 채 세계랭킹 1위에까지 오른 ‘꼬마천사’ 신지애와 오버랩됐다. 작은 체구와 동글동글한 얼굴, 해맑은 미소도 빼닮았다. 2012년 여름 폴라 크리머와 9홀 연장 혈투를 벌여 우승한 다음 주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9타 차로 우승하던 장면은 만화 이상으로 드라마틱했다.

앤서니 김은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오혜성이었다. 그는 PGA 투어에 데뷔할 때 씹는 담배를 질겅거리면서 “나는 호랑이 타이거 우즈를 상대할 사자”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약자인 ‘AK’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버클을 차고 다녔고, 우즈에게 다가가 “당신의 TW로고보다 내 AK로고가 크다”고 도발도 했다. 오른쪽엔 검정, 왼쪽엔 흰색 신발을 신고 대회에 출전해 “실력이 없으니 패션이라도 튀어야 하지 않느냐”는 시니컬한 말을 한 반항아였다. 2009년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대회 사상 한 라운드 최다 기록인 버디 11개를 잡는 장면은 경이로웠다.

요즘 두 선수의 소식이 뜸하다. 근황을 묻는 사람이 많다.

미국 투어를 떠나 일본으로 간 신지애는 올해 8개 대회에서 톱 10에 3번 들었다. 최종 라운드 중반 단독선두로 나섰다가 역전패한 경우도 있고, 지난 주엔 컷 탈락, 이번주에도 중하위권이다. 일본에 가면 단박에 1등을 할 것 같았지만 기대와 달리 아직 우승이 없고 세계랭킹은 24위까지 밀렸다. 일본 상금랭킹 14위다.

앤서니 김은 2년 전 이맘때 사라진 후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 통증과 아킬레스건 파열로 지난해 여름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직도 무소식이다. 아직 골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상 전 음주 문제로 몇 차례 구설에 오른 앤서니 김은 장발로 캘리포니아에서 파도를 타면서 보헤미안처럼 살고 있다는 소문이 간혹 들린다.

모든 사람은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이런저런 상처, 아픈 가족사를 안고 산다. 두 선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앤서니 김은 가족과 떨어지기 위해 LA에서 대학을 멀리 오클라호마까지 갔다고 알려졌다. 신지애도 골프에 올인하는 교육에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들의 열정이 비교적 일찍 사라진 것은 성장 과정과 관계가 있으리라 본다.

그래도 두 선수는 자신들의 재능에 감사해야 한다. 앤서니 김은 재능을 낭비한 대표적인 선수로 꼽힌다. 앤서니 김과 비슷한 선수는 리 트레비노였다. 탁월한 재능, 소수 인종, 그로 인해 생겼을지도 모르는 반항적인 태도 등이 비슷했다. 트레비노는 결혼을 하면서 진정한 엘리트 선수가 됐다. 트레비노는 “얼마나 재능을 허비하고 있는지를 아내가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작은 키 때문에 고생했다. 미셸 위 같은 키 큰 장타자가 부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미셸 위가 신지애를 부러워했던 사실도 알아야 한다. 미셸 위가 허리를 굽히고 퍼트하는 것은 신지애 때문이었다. 땅과 가까워서 퍼트를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두 선수가 한 조에서 경기한 2011년 기아 클래식이 기억난다. 드라이브 샷 거리가 약 60야드쯤 차이가 났는데 신지애가 세컨드 샷을 핀 옆에 더 가까이 붙였다. 자로 잰 듯한 신지애의 정확성에 미셸 위가 힘들어했다. 이후 찾아온 미셸 위의 슬럼프는 신지애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신지애는 “미국에서 부상과 힘든 일정 때문에 열정을 잃었다”고 했다. 다시 열정을 찾고 팬들 앞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은 스포츠 스타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스타에게 무소식은 슬픈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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