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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만의 숙원…「구마 고속」 84km가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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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마 고속도로가 개통된다.
『이 길은 금수강산을 누벼 가는 길이요/고을마다 문화의 전통이 깃든 길이며/다시 그대로 경제 발전의 대동맥이요/새 시대 문명을 실어오는 지름길이라/즐거운 정신 생활·풍요한 현실 생활로/자손만대에 전할 복된 길이 될 것이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구마 고속도로 예찬기」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번에 개통되는 구마 고속도로는 8백만 영남 도민들의 40여년에 걸친 꿈의 실현.
1936년 대구와 마산 상공회의소가 주동이 되어 조선총독부에 구마선 철도 부설 탄원서를 제출한지 꼭 41년만에 실현이 된 셈이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군사적 목적의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고 농산물 수송을 위한 호남선 철도가 급했던 만큼 구마선 건설을 요청한 도민들의 탄원은 일고의 여지도 없이 외면했던 것.
해방이 되자 다시 국회를 통한 도민들의 서명 운동이 벌어져 28차에 걸친 건의서를 제출한바 있으나 계속 미뤄지다가 경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철도」가 「고속도로」로 바뀌어 거의 반세기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1시·4군·15개 면을 통과>
영남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전장 84·5km의 이 도로는 경남북의 1시·4군·2읍·15면을 통과, 남해 연안의 수출 공업 지역과 내륙의 경제권 역을 연결함으로써 낙동강 유역의 농업 개발과 영남 내륙 지방의 관광 자원 개발을 촉진할 수 있게 됐다.
한선당 김굉필 선생의 도동서원·진흥왕순수비·망우당 곽재우 선생의 유적과 부곡온천 등이 모두 도로 양면을 끼고 들어서 있다. 도로 개통을 앞두고 특히 각광을 받는 곳은 최근 개발된 부곡 온천으로 벌써부터 「뉴·타운·붐」이 일고 있다.
작년 7월1일 착공되어 준공을 불과 열흘 남짓 앞둔 구마 도로는 지금 마지막 단장에 바쁘다.
총 연장 2천7백11m에 달하는 35개의 대소 교량과 5백65m의 옥포「터널」은 이미 포장까지 끝냈고 현풍 휴게소와 5개소의 「버스」정류장, 내서와 화원 두 곳의 「인터체인지」도 부대 시설 공사를 모두 마쳤다.
현재 노폭은 13·2m로 2차선. 그러나 장래 교통량 증가 추세에 맞추어 4차선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소요 토지를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
대구에서 마산까지 기존 국도를 이용할 때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20분. 그러나 구마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20분 밖에 안 걸려 2시간이 단축되며 경부 고속도로와 남해 고속도로를 이용, 부산을 경유하여 마산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2시간10분 보다도 1시간10분이 더 단축되게 됐다.
특히 대구-고령-거창-남원-광주로 가는 현 국도와 구마 도로를 이용하여 대구-마산-진주-순천-광주로 갈 경우 국도로는 7시간30분이, 고속도로로는 4시간10분이 걸려 대구∼광주간의 거리를 3시간20분이나 단축시킴으로써 「영호」간의 교류를 더욱 촉진시킬 수 있게 됐다.
도로 건설에 소요된 예산은 내자 97억3천7백만원, 외자 l백39억8천2백만원으로 모두 2백37억2천만원.
1km당 2억8천만원 가량이 들어 70년에 완공된 경부 고속도로의 공사비 km당 1억원에 비해 3배 가까이 소요됐다. 경부 고속도로가 4차 선인데 비해 2차선의 구마 도로가 이렇게 많은 예산이 든 것은 그 동안의 물가 상승과 보상비 인상 때문이다.


이 도로 명물의 하나는 남지 대교.
대구기점 67·5km에 낙동강을 가로질러 경남 창령군 남지읍과 경남 함안군 칠서면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V자형 교각으로 유명하다. 총 연장 6백80m의 이 다리는 교각과 교각 사이가 65m나 돼 우리 나라 「콘크리트」교 중에서는 가장 경간이 긴 교량.
일반적으로 장 대교는 경간의 길이가 30m가 넘을 경우 강 구조로 건설하는 것이 보통인데 65m나 되는 이 다리를 「콘크리트」 구조로 시공한 것은 공사비를 절약하는 동시에 미적 감각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한 것.
유일한 옥포 「터널」도 우리 나라에선 처음으로 「비닐·커버」 공법을 사용함으로써 저렴한 공사비로 고질적인 「터널」 내부의 누수를 방지케 되어 남지교와 함께 우리 기술진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공사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난점은 없었으나 6·25사변 당시의 격전지였던 영산 지방의 건설 공사 때 인부들이 지뢰가 매설됐다는 이유로 작업을 기피, 군의 도움을 받아 지뢰 탐지기까지 동원하는 등 2개월간 공사를 중단한 채 지뢰 제거 작업을 계속하기도 했다.
창령에선 가야시대의 고분이 계획 선을 가로막아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현장까지 와서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금반지·가락지·귀고리 등 가야시대의 유품이 쏟아져 학계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정부는 「구마」를 끝으로 당분간 고속도로 건설은 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이 도로는 70년대의 마지막 고속도로가 될 것 같다.
글 고흥길 기자
사진 양원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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