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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브뤼셀 방문 전 선물 … EU "중국과 FTA 검토" 화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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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월 30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 인근의 판다공원 개원식은 중국의 판다 외교 현장이었다. 마틸드 벨기에 왕비, 필리프 벨기에 국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펑리위안 여사(앞줄 오른쪽부터)가 중국 판다 하오하오(왼쪽)가 사는 판다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까만 눈두덩, 거대한 몸통, 게으른 자태와 놀라운 먹성.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외교관’으로 불리는 판다의 특징이다. 중국은 쓰촨(四川)·간쑤(甘肅)·산시(山西)성 산악지대에만 사는 판다를 오래전부터 외교 무대에서 활용해 왔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당나라 때인 685년 일왕에게 판다 두 마리를 보낸 것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판다는 중국 소프트파워 외교의 대표 상품이 됐다. 판다가 있는 곳에서 중국 외교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9일 황후이캉 주 말레이시아 중국 대사는 쿠알라룸푸르 근교 네가라 동물원에 마련된 ‘특사들’의 숙소를 꼼꼼히 살폈다. 쓰촨성 판다 보호 구역에서 데려올 판다 팽이와 푸와가 머무를 곳이다. 황 대사는 이 자리에서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우정은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우정의 상징인 (판다) 특사들은 양국 간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다들은 27일로 예정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중국 방문 전 도착할 예정이다.

 중국이 말레이시아로 판다를 보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지난달 초 도착하기로 돼 있었으나 중국은 갑자기 연기했다. 중국인 153명을 포함해 총 239명이 탑승한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 실종이 표면적인 연기 이유였다.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는 “MH370 실종으로 ‘중국-말레이시아 우정의 해’가 타격을 입었다는 첫 신호”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여객기 실종 이후 엉뚱한 지점을 수색하는 등 우왕좌왕한 말레이시아 정부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었다.

 양국은 불화설을 부인했지만 판다를 데려오기 위해 2012년부터 준비해 온 말레이시아 정부로서는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집 총리가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에게 직접 임대를 요청하고 거액을 들여 판다 복합 사육시설을 만들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판다를 빌려오기 위해 쓴 비용은 2500만 링깃(약 79억원)에 달한다.

 현대에 들어 중국이 판다를 외교에 활용한 첫 사례는 1957년 모스크바 동물원에 선물한 핑핑이었다. 북한은 65년부터 82년까지 판다 다섯 마리를 받았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중국 밖에 보내진 판다는 30여 마리로 추정된다. 야생상태에선 1600마리 정도 남아 있다. 중국은 멸종위기 동물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한 국제법에 따라 84년부터 판다를 임대 형식으로만 내보내고 있다.

 판다 외교에 불을 댕긴 인물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다. 중국은 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역사적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링링과 싱싱을 선물했다. 이 결정은 방중 길에 동행한 팻 닉슨 여사가 만찬 중 건넨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베이징 동물원을 방문해 판다를 구경한 팻 여사는 만찬 식탁 위에서 판다가 그려진 담배를 발견하고 “동물원에서 봤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저우 총리가 “몇 마리 드리겠다”고 화답하며 현대 판다 외교의 서막이 올랐다.

 저우 총리가 보낸 판다 커플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이상 열기로 불릴 정도로 뜨거웠다. 워싱턴 동물원에서 판다 커플이 공개된 첫날에만 관람객 2만 명이 몰렸다. 첫해 방문자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 90년대 판다 커플이 죽자 중국은 이들의 빈자리를 메우라며 2000년 메이시앙과 티앙티앙 커플을 보냈다. 새 판다 커플은 지난해 1월 인공 수정으로 새끼 바오바오를 출산하며 화제를 낳았다.

 판다 외교는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유럽 순방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시 주석 부부는 벨기에 필리프 국왕 부부와 함께 브뤼셀 외곽 판다공원 개원식에 참석했다. 이 공원에 15년간 머무르게 된 판다 싱후이와 하오하오는 벨기에 도착 당시 엘리오 디뤼포 벨기에 총리가 공항에 직접 나와 영접할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이날 시 주석은 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판다 모양 완구를 선물하며 친근한 중국의 이미지를 전했다.

 시 주석의 판다 외교 행보는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 방문 전날 이루어진 것이라 더 주목 받았다. 중국과 EU 사이에는 중국 인권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껄끄러운 현안이 산재해 있다. 중국이 적대적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EU 본부 방문 직전 판다 카드를 사용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시진핑은 벨기에 방문 중 EU로부터 “(회원국 내 반대 여론이 있지만) 중국과의 FTA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냈다.

 한국에선 현재 판다를 볼 수 없다. 94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가 한·중 수교 2주년을 기념해 판다 한 쌍을 임차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난 98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판다를 임차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부부장에게 “한국에 판다를 보내는 문제를 시 주석에게 건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연 100만 달러(약 10억3000만원)에 달하는 판다 임대료를 포함해 초기 1년 약 150억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영선 기자

시시콜콜 판다

① 특징 몸 길이 120~180cm. 몸무게는 160kg(수컷 성체 기준). 부모의 크기 대비 가장 작은 새끼를 낳는 포유류로, 갓 태어난 판다는 어미의 800분의 1인 112g 정도.

② 식성 육식동물을 조상으로 둔 채식주의자. 영양가가 없는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게 되면서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은 잔다.

③ 수명 야생에선 평균 20년. 사육 판다는 30년 . 최장수 기록은 34년.

④ 성격 고독을 즐긴다. 짝짓기 계절(4~5월)을 제외하곤 다른 개체와 교류가 없다. 이 때문에 마리당 4~6㎢ 크기의 서식지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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