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건망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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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슈베르트」는 건망증이 좀 심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포글」의 노래를 듣고 있다가 깜짝 놀라 그의 노래를 멈추게 했다. 아름다운 「멜러디」에 감동되어 그 작곡자를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이 곡은 바로 그가 2주일 전에 작곡했었다.
영국의 소설가「헉슬리」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번번이 행선지를 잊어버리곤 했었다.「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은 하루 세끼의 식사를 흔히 잊고 지냈다. 방금 먹은 점심도 까맣게 잊고 다시 청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나라의 민화에도 건망증 얘기가 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다가 담배 한 모금을 피우고 싶었다. 낫을 옆에 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숲에 나뭇가지들이 우거진 것을 보고 『낫이 있어야 나뭇가지를 치지!』하고 한숨을 쉬었다.
담뱃재를 털고 일어나는데 바로 옆에 낫이 있었다. 『그것 참 잘 됐다. 누가 놓고 갔는지…. 』 그는 좋아라 했다.
한참 나뭇가지를 치고 있는데 앞서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산불이 났다. 그는 가슴을 치며 이렇게 통탄했다. 『어떤 녀석이 담뱃재를 끄지 않았군!』
지난 한햇동안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화재 가운데 3분의1은 하찮은 부주의가 그 원인이었다. 담뱃불·난로·성냥불·아궁이·불장난 등. 이들은 대부분이 건망증에서 비롯된 화재들이다. 깜박 잊고 있었거나, 깜박 내버려둔 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불이 난 것이다.
요즘은 생활의 간편화와 함께 「가스」나 유류를 가까이 할 기회가 훨씬 많아 졌다. 「가스」의 경우는 냄새도 빛깔도 없어서 여간한 주의력이 없으면 화재로 번질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유류의 경우는 인화성이 강해 한번 불길이 일면 손을 쓸 경황조차 없다. 또 가전기가 생활화하면서 그 위험도 적지 않다. 화재의 16.7%가 전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화재는 해마다 늘고만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도 20.7%나 증가했다. 그 재산 손실만 해도 84억원에 이른다. 하루 평균 2천3백만원씩이 오유로 돌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영과 무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인명도 적지 않게 피해를 보고 있다. 화사상자가 지난해엔 무려 8백90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2백20여명은 목숨을 잃었다.
대화로는 대연각「호텔」의 악몽조차 갖고 있다. 어느 경우를 생각해도 화재처럼 어이없는 것은 없다.
요즘은 불조심 강조기간.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 주변의 방화점검과 함께 그 화재요인에 대한 건망증을 일소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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