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홍수 수준미달도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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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학계·예술계·일반 사회단체 등에서는 「세미나」·「심포지엄」·발표회 등을 경쟁적으로 개최, 「세미나」풍년을 만들고 있다. 특히 금년 가을 들어 불붙기 시작한 「세미나」의 범람은 9월1일부터 이 달 말까지 3백여 건을 기록, 하루평균 5개정도의 각종「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따라서 「세미나」의 질이 떨어지고 업적·건수 올리기 등의 「세미나」가 많아졌다는 것이 학자들의 요즘「세미나」사태에 대한 평가다. 게다가 일부사회단체는 자기단체의 명의로 「세미나」를 개최해 주도록 학술기관에 의뢰, 『세미나교수』 『세미나청부업』이라는 신종 유행어를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세미나」유행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모았다. <편집자>

<김성태(고대교수·심리학)>
교수들의 기능 중에는 학교강의·연구·사회봉사 등 크게 3가지가 있으므로 「세미나」 등에 참여, 사회현실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청부「세미나」라는 말이 있듯이 특정단체의 이익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파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본다. 특히 사회가 다양화 돼 가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사회참여는 당연하지만 앞서 말한 교수의 3가지 기능이 균형을 이루는 선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정흠(고대교수·물리학)>
「세미나」는 그 성질상 학자들만이 참가하는 학술적인 것과 대중에게 홍보효과도 노리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세미나」가 많아 졌다는 것은 그만큼 발달했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년 들어 개최빈도가 더욱 많아진 알맹이 없는 전시효과위주의 각종 국제회의, 외국의 저명한 인사 초청「세미나」는 투자비용에 비해 그 성과가 너무 빈약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소광희(서울대 교수·철학)>
전공분야가 큰 규모의 「세미나」와는 관련이 없어서 학술회의에나 가끔 나갈 뿐 내용이 신통치 못한 「세미나」는 관심도 없다. 최근의 「세미나」경향은 학계의 은축된 쟁점을 관계학자가 만나 서로 입장을 밝히고 새로운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 아닌 건수위주가 많은 인상이다. 회장이 새로 됐으니 실적을 올리기 의해, 봄이나 가을의 계절에 따라 으레 한번은 「세미나」를 해야한다는 사고방식은 지양돼야 할 것이다.

<한영우(서울대 교수·한국사)>
「세미나」「심포지엄」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은 두 가지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다. 긍적적인 면에서 그만큼 학문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면에서는 일반사회의 특정 단체가 형식적인 업적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일반사회단체의 「세미나」는 학자를 이용하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면에서 학자들의 「세미나」를 후원함으로써 양성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추헌수(연대 교수·정치사)>
정치·경제 등의 사회과학분야는 학문의 성격상 자연히 현실문제에 관한 「세미나」가 자주 열린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학자로서는 과도할 만큼 현실정책 등에 깊이 관여하는 감이 없지 않다.
외국의 경우 학자들의 연구방향에 정책이 역행하지 않는 것도 워낙 튼튼한 이론을 학설로서 현실사회에 제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이 시류를 타는 「세미나」에서의 발언보다는 기초적인 지식과 방향제시가 필요할 것 같다.

<서우석(서울대 교수·작곡)>
우리의 경우 「세미나」란 특정한 주제에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참가하여 연구발표·질문·대담·토론의 과정을 거쳐 가능한 한 끝까지 「테마」를 파고드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적당한 과정만 형식적으로 끝내면 주최측이나 참가자가 어물어물 적당한 선에서 끝내버리는 것으로 되어있는 듯하다. 이것이 오늘의 실속 없는 「세미나」사태의 원인이 아닐까.

<이호철(작곡)>
「세미나」란 원래 오랫동안의 연구결과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세미나」는 대부분 행사를 가지는데서만 의의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형식에 그치는 인상이 짙다.
주제발표자들은 상식적인 이야기만 나열하면 의무가 끝난다고 생각하며 참석자들도 들어주면 된다는 식이다. 주제도 거의 흥미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이다.

<오규원(시인)>
「세미나」를 한번 열기 위해서는 막대한 경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처럼 많이 열리고 있는 「세미나」들이 과연 그 막대한 경비에 합당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었는지 의문이다. 주최자와 주제발표자, 심지어는 참석자들조차 「세미나」 개최의 의의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상철(연극평론가)>
연극은 공연을 주로 하기 때문에 「세미나」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에는 몇몇 극단에서 연기·연출에 관한 초보적인 「워크·숍」형태의 「세미나」를 자주 열어 오히려 반가운 생각이다. 그러나 금년 가을 특히 폭주하는 「세미나」의 구제를 보면 한데 묶어도 좋을 비슷한 주제가 10여 종류는 눈에 띈다.

<임영방(서울대 교수·미술평론가)>
「세미나」는 본시 충분히 연구되던 과제를 어떤 문제점과 해결방향을 찾기 위해 갖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 가서 유행되는 현상은 그 행사로써 문제가 해결된 듯 여기는 것 같다. 끝나면 그만이어서 계속적인 작업이 없다. 그것은 「세미나」를 단지 선전적 행사로 삼는 때문이다. 「심포지엄」과 달라서 「세미나」는 공개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분석·검토하는 모임이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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