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장비이양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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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미대통령은 21일 향후 5년간에 걸쳐 주한 미2사단의 보유장비 중 8억「달러」어치를 한국군에 무상 이양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박동선 사건으로 이 법안을 다룰 미의회의 분위기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터」대통령이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것은 그만큼 그의 주한 미지상군 철수 의사가 완강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최근 휴전선부근에서 나타난 북괴의 변함없는 침략성도, 미의회의 미묘한 대한 분위기도, 미국내의 철군반대여론도 「카터」대통령의 철군정책 수행에 별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무기이양법안의 의회제출로 이제 주한미지상군 철수 계획은 실천단계에 접어들었다.
철군 반대라는 기본입장을 일단유보하고, 그 보완조치 안을 놓고 볼 때 무기무상 이양 분 8억「달러」는 지난 7월 미국 측이 제시했던 5억「달러」선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은 대한군사판매차관(FMS)을 합쳐 총 19억「달러」의 추가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그 중 3억「달러」어치가 이번에 차관에서 무상이양으로 바뀜에 따라 그 구성비는 8억「달러」 무상군원에 11억「달러」차관으로 조정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액수는 우리의 자주국방수요와 비교해 볼 때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한·미 군사전문가들은 75년 후반에 시작된 국군전력증강 계획에 철군으로 인한 추가 보완수요를 합쳐 70억∼80억「달러」의 군사수요를 측정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번의 무기무상 이양 분의 상대적 증가는 우리의 부담을 그만큼 줄이는 것이긴 하지만, 총 군사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작아 큰 도움이 될 정도는 못된다.
따라서 이 법안이 미의회에서 승인돼 무기의 대한이양이 이뤄진다 해서 철군에 대하 우려하는 우리의 기본판단이 수정되기는 어렵다.
원래 서울과 휴전선 사이에 전개되어있는 미2사단은 스스로가 보유한 전투능력 이상의 독특하고 고유한 기능을 수행해왔다. 미 지상병력이 중요한 위험지대에 의도적으로 주둔해있음으로써 북괴가 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각오 없이는 모험을 하기 어렵게 하는 전쟁억지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다. 바로 주한 미 지상군의 연계철선적 역할이다.
이 기능은 서울 남쪽에 있는 미 공군부대나, 한반도주변의 미 해군이 대신할 수도 없으며, 하물며 한국군에 의해 수행되기는 더구나 불가능하다.
이러한 미 지상군의 대체되기 어려운 고유 기능을 8억「달러」어치의 무기무상이양이나 19억「달러」의 대한지원이 완전히 상쇄한다거나 보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로서는 다만 미국정부가 지상군을 기어이 철수하겠다하니 그 정도의 보완조치가 있으면 단계적인 철수를 용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수동적인 각오가 되어 있을 뿐이다.
때문에 미국의회에 대해 대한무기이양법안을 적극적으로 이러 이러하게 해달라고 특히 말하고는 싶지 않다.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그 나마의 보완조치조차 선행되지 않고서야 어찌 주한 미 지상군이 철수될 수 있겠느냐는 것뿐이다. 미 정책수립가들의 깊은 통찰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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