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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으로 '한'이 풀렸죠, 한식당 더 낸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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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마르자 봉게리히텐(왼쪽)이 남편 장 조지와 요리를 맛보고 있다. [사진 프라페 프로덕션(Frappe Inc.)]

세 살 때 먹었던 한식의 맛을 잊지 못해 ‘한식 전도사’가 된 사람이 있다. 마르자 봉게리히텐(38)이다. 주한 미군과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 가정에 입양된 후 열아홉의 나이에 생모와 재회했다. 그는 “어머니는 처음 만난 날 입양되기 전 제가 즐겨먹던 음식을 해주셨는데 17년 동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었음에도 과거의 나와 온전히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한국 음식에 대한 나의 ‘강박증’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친어머니가 해준 음식에 대한 애정은 한식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로 연결됐다. 2011년 미국 PBS 방송의 13부작 다큐멘터리 ‘김치연대기’(Kimchi Chronicle)를 진행했고, 이듬해 아메리칸 대학의 푸드코트에 한식당 ‘김치 여신’을 연 데 이어 이달 19일엔 상하이에 한식 전문점 ‘CHI-Q’를 오픈한다. 이곳에서 그는 비빔밥과 김치찌개, 파전·잡채·무국 등 전통 한식을 판다. 새 레스토랑 오픈 준비로 바쁜 그를 e메일로 만나봤다.

 - 왜 ‘상하이’에 입지를 선정했나.

 “남편 장 조지(미슐랭 최고등급인 3스타 셰프로 뉴욕 등 전 세계 20여 곳의 레스토랑 운영)의 레스토랑 두 곳이 이미 상하이 부촌의 패션명소인 ‘스리 온 더 번드’ 빌딩에 있어 같은 곳으로 정했다. 이 레스토랑 투자자가 ‘김치연대기’ 방송을 본 뒤 한식에 감명받아 나와 남편에게 한식당을 열자고 제안했다. 자신의 요리 스타일에 한식을 접목한 퓨전 요리는 남편이, 김치찌개·잡채·파전 같은 전통적인 한식 메뉴는 내가 개발했다. 유행을 좇는 젊은층과 외국인, 늘어나는 중국 중산층이 주요 타깃이다.”

 -‘김치연대기’부터 한식당까지, 한식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이유는.

 “어머니와 1995년에 재회했다. 속초에서 만난 외할머니가 구멍가게로 날 데리고 가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다. 그 순간 한 손엔 바나나 우유를,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생각났다. 인간의 감정은 참 놀라운 것이어서 한국땅을 밟는 순간부터 이 땅의 공기와 냄새,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내 복받치는 슬픔을 느꼈는데 어머니는 그것이 ‘한(恨)’이라고 하셨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이 이어졌지만 언어 한계로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러다 ‘김치연대기’ 촬영차 전국을 다니면서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목격했고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 입양에 대한 상처는 어떻게 극복했나.

 “길러주신 어머니께선 어린 시절부터 늘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네 어머니는 선택조차 하지 못했던 삶을 살았던 거야’라고.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19세의 싱글맘이 사회가 원치 않는 흑인 혼혈아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힘들었던 시대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입양밖엔 답이 없는 여성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현재 한국인 싱글맘 5명을 후원하고 있다. 왜 여전히 사회는 미혼모가 그의 아이를 키우길 원하는데도 그에게 5개의 일자리를 제안하기는커녕 ‘블랙 마크’로 낙인을 찍느냐.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 사회가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 김치를 직접 담근다고 들었다. 한식을 만드는 데 어려운 점은.

 “나는 김치를 정말 많이 담근다. 한식이 어렵다는 건 편견이다. 단지 다른 요리에 비해 인내심과 공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EMO(이모·그만의 친척 표기법)’가 가르쳐준 대로 마늘은 한꺼번에 다져 냉동 보관한 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조리 시간을 아낄 수 있다. ”

 - 끝으로 한식 세계화를 위한 조언은.

 “필요한 건 시간이다. 후니 킴, 데이비드 창 등 유명 셰프들을 중심으로 이미 한식은 고급화와 주류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다만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레스토랑의 실내 장식과 분위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지식을 갖고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직원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인생에서 확신하는 한 가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저의 ‘한식 여정’을 위해 조리법과 요리팁을 보내준 많은 한국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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