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총 점검…한국과 외국의 경우|방황하는 재수생 한국(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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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붙은 자는 대학으로 가고 떨어진 자는 재수로(로)로 간다.』서울 도심 광화문 뒷거리와 화신 옆 골목 학원 가. 재 수로로 불리는 이곳에 대학 입시 낙방 생인 재수생들이 이른 새벽부터 몰려든다.
재수생. 이들은 대학의 좁은 문을 뚫지 못하고 후배들과 입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대학생 예비군.
줄잡아 10만 명을 웃도는 이들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되씹으며 대학진학의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더 좁아진 대학 문>
재수생은 대학의 문이 좁기 때문에 생기그 이들 때문에 입시 경쟁이 해마다 치열해진다.
대학 문은 대학의 정원 증원 율이 대학 진학희망자 증가율을 따르지 못해 더욱 좁아지고 있다. 따라서 재수생이 누증되고 재수생들 때문에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문교부에 따르면 71년 전국대학 정원은 4만7천8백75명으로 고졸자의 27.5%(진학 희망자의 33.4%)를 수용할 수 있던 것이 차차 떨어져 76년 도에 19.5%(23.10%), 77년 도에 18.3%(22.6)선에 머무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입시에 떨어져 다음해 응시하는 재수생이 71년 4만7천9백56명에서 77년에 9만1천8백47명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내년에는 재수생이 10만명 선을 넘어 12만1천50여명이 지원했다. 따라서 78학년도에는 총31만9천여 명이 응시, 24만여 명이 낙망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79학년도부터는 3수 이상 감점 제 등 재수생들에게 불리한 규제 책이 시행되기 때문에 이른바「막차」를 타기 위한 다툼이 모든 응시 생들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대입 재수생의 하루는 고달프다.
낮엔 학원, 밤엔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며 하루 세끼 매식과 독서실의 새우잠, 합격에의 강박감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다.
3수 생 이광도 군(21). 고향인 경남C시에서 작은 어장을 갖고 있는 중산층의 부모 덕으로 76년 1월 고교를 졸업하자 서울 유학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지방 고교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서울사립 명문인 Y대에 응시했으나 낙방, 첫해에 고배를 마셨다.
올해도 같은 대학에 응시했으나 다시 떨어져 내년에는 후기대학이라도 꼭 들어갈 결심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 군의 현주소는 서울 종로2가 J독서실. 상오 6시쯤 독서실 유리창 너머로 동이 트기 시작하면 닭털 침낭이 전부인 이부자리를 정리, 사물함에 넣고 곧장 칸막이로 된 고정 석에 앉는다.
재수하는 주제에 하숙을 할 수도 없어 월 4천5백원을 주고 독서실에 묵고 있다.

<독서실서 새우잠>
상오 8시. 2시간정도 학원에서 배운 영어·수학문제를 복습한 후 10m가량 떨어진 지정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끝낸다. 「메뉴」는「2찬1식」(국·김치·밥)의 백반 값은 2백원.
학원은 9시에 시작된다. 연초 독서실 근처 K학원 종합 반에 등록, 계속 다니고 있다.
한달 수강료는 1만2천4백원. 첫 등록 때에는 입학금·교재 대 등 이 더 붙어 2만2천 원 가량이 들었다.
상오 학과는 필수 과목인 영어·수학.
50분 수업에 10분 휴식. 일반 고등학교 교실 만한 강의실에 1백∼1백20명이 들어서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지정좌석은 없고 등록금 납입 날짜 순 에 따라 앞쪽에서부터 앉게 돼 있다.
지루한 수학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왔다. 복도에 담배연기가 자옥해지고 여학생들은 한구석에 몰려 연신 기침을 한다. 점심은 학원 어귀에 있는 분식「센터」에서 1백50원 짜리 냄비 우동으로 대신한다.
하오 학과는 선택과목. 상오와는 달리 웬일인지 졸리기만 하고 강의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오 4시 하루학과가 모두 끝난다.
학과수업이 끝나자 곧장 독서실로 돌아왔다. 좌석이 많이 비어 있다. 갑자기 전신에 피로가 엄습해 온다.
하오 7시. 순두부백반으로 저녁을 때운 뒤 복습을 시작한다.
책갈피를 넘기지만 자꾸만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자꾸 눈이 감긴다.
각성제를 한 알 먹었다. 졸음이 약간 가셨지만 정신은 멍해 졌다. 그래도 잘 수는 없다. 고향 부모와 대학에 들어간 동창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를 악물고 수학을 10문제 가량 풀었다. 다시 영어와 사회 복습. 자정이 지나서야 닭 침낭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재수생의 고뇌는 스스로 겪어 보지 앉고는 말할 수 없다.
입시 경쟁에서 떨어진 패배감은 이들에게 무한한 고독과 인내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불면·두통·어지러움·우울 감·열등감 등 이른바 입시 병에 시달린다.
입시 병은 재학생에게도 마찬가지. 서울「카톨릭」의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교생(조사대상자 4천5백 명)중 22.4%가 입시경쟁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고 2년 생과 고 3년 생에게 신경질적 경향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류 병 없어져야>
재수생 중 63%가 수면제를, 23%가 신경 안정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입시경쟁에 따른「스트레스」의 심각함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입시 경쟁은 심한「일류 대학 병」때문에 과열되고 있다.
『일류 병에 시달리는 대학 지망생이 생각보다 많다』는 게 서울시내 대입 재수학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C학원에선 수업중인 재수생 8백23명중 57.6%가 후기 대학에는 아예 응시조차 하지 않았거나 후기대학에 합격했으면서도 재수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재수하면서까지 일류대학에 진학하려는 이유는『사회생활에 유리하기 때문(71.8%)』이라고 응답, 학벌을 중요시하는 의식구조가 입시 경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특별취재반><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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