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의 북괴접촉 용의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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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 미국 대통령은 『만일 한국이 참여한다면 북한사람들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긍정적 표현방식은 종전까지의 부정적 표현방식에 비해 『일정한 조건 하에서』 북괴와 대화할 수 있다는 미국의 주관적 희망이 좀더 집중적으로 피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거시적으로 보아 그것은 현안의 주한미지상군 철수계획의 추진과 병행해서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한반도 평화유지 전략의 한 측면이라 평가할 수 있다.
주한 미지상군 철수가 한반도 평화유지 기능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군의 전력증강 지원과 아울러 북괴를 합리적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할 정치 외교적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카터」대통령은 이미 각종 외교「채널」을 통해 북괴가 남북대화와 미·중공·남북한 사이의 4자 회담에 동의하기를 희망하는 몇 가지 적극적 신호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 국민의 북에 여행제한을 해제한 것이라든가, 미 국회의원의 북괴방문을 종용한 것, 또는 「티토」 「유고」대통령을 통해 미국의 평화의사를 북괴에 전달한 것 등이 바로 그러한 신호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선의표명에 대해 북괴는 과연 어떠한 전략으로 대응해 왔던가.
미국의 「선의의 신호」에 대한 북괴의 응답은 한마디로 『상대방의 선의를 역이용하려는』 공산주의자 특유의 전략적 대응뿐이었다. 미국의 「선의」를 미국의 「후퇴」로 악용하여, 그것을 대남 적화전략 진전의 한 계기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현 단계에 있어서의 북괴의 대남전략 목표는 한국을 소외시킨 채 진행되는 미·북괴 직접협상의 성취와, 그것을 통한 한반도 상황의 월남화에 있다. 때문에 그것은 형평·공존의 원칙과 합리성을 전제로 한 미국의 대화 유도노력과는 그 의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미국의 목표가 남북한사이의 공존확보에 있는데 반해 북괴의 그것은 한미이간과 한국 고립화를 통한 남한 적화촉진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과연 이러한 북괴저의를 잘 알고 행동하는가, 모르고 행동하는가. 만약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미국은 그 위험성을 충분히 감안하고서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다 적절히 관리해야만 할 것이다.
미국의 의도가 제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한 것일지라도 그 표현형식이 조금이라도 북괴의 오판과 악용을 조장할 요소를 내포한 것이라면 미국은 그 위험성을 최소한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물론 「브레진스키」보좌관은 「카터」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확하게 곡해·오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명과 보충설명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북괴와의 대화라기보다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이며, 미국은 『한국을 고립시키거나 저해하는 여하한 일에도 가담하지 않겠다』고 한 확언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 역시 「카터」대통령의 즉석발언 하나를 가지고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오해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반도 대치상황의 심각성이나 북괴전략의 교묘함에 비추어 미국의 대 북괴신호는 좀더 신중하고 『충분히 준비된 것』이어야할 필요를 느낀다. 한반도문제에 관한 그 어떤 정책천명도 한미간의 충분한 사전토의를 거쳐야 하겠다는 당위다. 한국의 외교당국 역시 최근의 미국의 대 북괴신호와 관련해 우리측으로서의 정리된 견해를 보다 포괄적으로 제시해두어야 하지 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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