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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원 단의 북괴방문 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상·하원 의원들의 북한방문 추진보도나, 북괴외상 허 담에 대한 미국입국「비자」발급조치는 최근 미국정치의 풍향으로 보아 전혀 예측 밖의 사태는 아니다. 다만 그 사태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닥쳐온 것 같다.
「카터」행정부의 북한여행제한 해제조치, 전「아시아」적대국과의 관계개선 의사표명, 김일성의 서한에 대한 간접의사전달 등 그 동안 미-북괴관계의 변화조짐은 적지 않게 부심 했었다.
박동선 사건 등으로 냉각된 한미관계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다소 가속화한 것도 부인할 도리가 없겠다.
미국의 전적 대 공산 국과의 관계개선은 과격파 인물들의 방문→「스포츠」교류와 기자방문→국회의원 방문을 거쳐 정부간 접촉이 이뤄지는 과정을 밟는 게 보통이다.
「쿠바」와도 그랬고,「베트남」과도 마찬가지였다. 중공과의 경우만 예외적으로「키신저」의 비밀방문이 의원들의 방문에 앞섰을 뿐이다.
이렇게 미국 국회의원이 전적대국을 드나들게 되는 것은 비록 형식은「비공식」이지만, 정치적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이번 경우처럼 미국 행정부가 의원들의 북괴 측과의 접촉을 부추기는 듯한 상황아래선 더욱 그러하다. 미국정부가 의원들을 이용해 북괴와의 예비접촉을 모색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이다.
아직은 미국무성이나, 의원자신들이 북한방문 추진보도를 부인하고 있다니 좀더 사태추이를 두고볼 일이긴 하다.
허 담에 대한「비자」발급도 통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유엔」에 한국문제 등 이 제기돼「유엔」활동에 참가하기 위한「비자」발급이라면 통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유엔」활동과는 관계없이 다만「유엔」총회를 계기로「뉴욕」에서 열리는 비동맹외상회담에 참가하기 위한 이번「비자」는 전혀 별개의 범위에 속한다.
그 동안 미국은 한반도문제를 한국의 안정이란 차원에서 보고 다뤄 왔다. 그러던 것이 최근 일부에서 그 시각을 바꾸어 한반도 전체의 안정이란 안목을 기르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마치 북괴와도 얘기만 트면 저들의 위험성을 중화시키기나 할 듯한 환상에 젖어 있는 인상조차 감출 수가 없다.
북괴와 관계된 미국내의 이번과 같은 일련의 움직임이 이러한 환상에 혹시라도 오염된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이러한 환상이야말로 북괴의 술책에 말려들기 십상인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북괴는 지금까지도 한반도분쟁의 당사자를 남-북한이 아닌「미국 대 북괴」란 형식으로 부각시키려 돌고 있다.
이는 한반도문제의 기본설정을「민족해방투쟁」으로 왜곡하여 적화공작의 전술상 이점을 선 점하려는 전략에서다.
때문에 소-중공의 한국에 대한 상응한 조치 없는 미국만의 북괴에 대한 일방적 융통성은 북괴의 계략에 놀아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반도의 평화구조 마련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남-북 대화 등 당사자간 해결방식의 현실화를 어렵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괴에 관한 한 미국정부나 미국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신중히 행동해 주지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에 못지 않게 우리측의 능동적 채비가 절실한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한미우호관계는 전과 같지 못한데 미-북괴 적대관계가 풀릴 기미를 보인다면, 이는 우리 외교에 있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점 깊은 성찰과 차원 높은 외교노력이 요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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