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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리국 발굴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문경새재의 원 터가 삼국시대 이래의 유적지임이 밝혀져 영남과 기호를 연결하는 이 재의 역사를 재검토하게 했다.
문화재 관리국의 발굴조사반(반장 신영훈 전문위원)은 최근 원 터를 발굴, 삼국시대의 토기와 고려시대의 청자 및 조선초기의 분청사기와 백자 편 등을 찾아내는 한편 고려 때의 건물추구와 온돌을 드러냈다.
이러한 새로운 사실은 이제까지 새자 관문일괄 유적이 임신왜란 후 비로소 축조됐다는 통념을 뒤엎고 그보다 1천년 앞서부터 서서히 마련된 기초 위에 대대적으로 축조됐으리라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원 터는 새재 제1관문(주흘관 혹은 초곡 성문)과 재2관문(조곡관 욕은 중성문)중간에 있어 군 지휘관이 머물던 조령진자리, 개울가의 평지에 돌담처럼 쌓은 조그만 방형석성(55×35m)으로 그 안에 건물이 있었다. 높이 2∼3m되는 이 석성자체도 삼국시대의 석축 양식이 보이며『주흘관 조성기』에 보이는 고래의 고사갈이 성이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고 신 위원은 추정했다.
3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진 새재는 전형의 요새로서 임란중 신충원의 지휘로 축성하기 시작, 18세기초 숙종 때 완성된 석 성이다. 그중 원 터는 이들 일련의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고 삼국시대 당시부터 주요 요새로 부각됐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새재의 동쪽 계립령이 삼국시대의 주요 북상로였으므로 새재가 그때 어떤 구실을 했겠느냐는 데는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문경에서 재1관문과 혜국사를 거쳐 개립령을 잇는 통로는 요긴한 지름길.
한편 온돌 유 구는 고려 때 기왓장이 가득한 지층에서 발견돼 주목되고 있다. 특히 그 구들구조는 궁궐온돌에서 보이는 탕 방구들. 고래를 환상으로 돌린 뒤 방사선형으로 만든 특수 형태로 이 탕 방구들의 가장 오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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