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번지는 고교생의 은어|욕구불만의 배출구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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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교생들 사이에 쓰이는 속어·은어·비어의 정체를 밝히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되찾자는 남녀고교생들의 대화모임이 9일 서울YMCA에서 있었다.『우리들의 언어』란 주제로 열린 이날 모임에서 속어·은어·비어의 종류와 동기, 이것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바람직한 언어의 태도 등 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토론이 있었다.
현재 남녀고교생 사이에 쓰이고 있는 은어·속어·비어는 4백∼5백여 종.『김밥』(담배), 『수출품』(잘생긴 남학생), 『가을남자』(추남), 『고생보따리』(책가방), 『지옥행』(등교), 『고·고·마운틴』(갈수록 태산)등 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은어가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 고교생들은 ⓛ사회의 소외감으로부터의 반발 ②집단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는 동료의식 ③우월감과 자기보호 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교생들의 은어는 그 대상을 격상시키는 것과 격하시키는 것이 있는데 학교생활과 선생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격하시키고 있어 고교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이 바람직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황장안 양(16·염광 상고1년)은 청소년들의 은어가『욕구불만의 배출구로 쓰이며 참신·익살스러워 계속 번져 가고 있는 것 같다』며『그러나 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는 대부분 성인사회에서 흘러 들어와 변조되고 있어 어른들의 나쁜 언어생활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혜옥 양(17·숙명여고 2년)은 일반사회에서 쓰이는 속어나 비어가 고교생 층에 들어오면 고교생들의 재치와「위트」로 탈바꿈하며 그 속에는 청소년들의 반항기질과 비판정신, 그리고 그들이 내다본 사회상이 담겨진다면서『친구들 사이에서 즐겁게 사용되는 은어가 반드시 속되고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고교생들은 속어·은어·비어가 아름다운 우리 말을 해치는 가장 큰 장애로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대화의 모임에 참석한 고교생들은 학생들의 일상용어 정화를 위해서는 좋은 말을 만들어 가르쳐 주는 직접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스승과 제자의 인간관계 융화·사회의 청소년을 사랑하는 분위기 등 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김인회 교수(교육학)는 고교생들의 바람직한 언어경화에 대해 ①교사 자신이 스승이라는 높은 품위와 사명감을 갖고 ②학생들이 학교를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을 고쳐 주어 인격도야에 힘을 쏟고 ③학생들에게 담배·술등을 파는 행위를 없애고 사회전체가 선도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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