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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계 문제요? 사실 음대생 때 다 겪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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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혜은이 성악을 포기한 건 재능의 ‘한계’를 느껴서였다. 그는 “연기는 그런지 아직 모르니까 노력해야죠”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3일 종영되는 JTBC 월화드라마 ‘밀회’는 스무 살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이 대중의 관심을 우선 모았지만, 클래식계 내부 비리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드라마를 탄탄하게 끌고 가는 데 한몫했다. 그 중심에 아트센터 대표로 나오는 서영우가 있다. 오혜원(김희애)의 예고 동창이자 직장 상사로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고자 계모와 사사건건 다투는 철부지 역이었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김혜은(41)이 서영우를 맡아 드라마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첫회부터 혜원의 뺨을 때리고 계모 한성숙(심혜진)과 드잡이를 하는 등 악역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종영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김혜은은 “사실 음대에서 다 겪었던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학생들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교수가 설혹 음악계에서 내쳐지면 학생은 뿌리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음대 학생들이 교수에게 맞아 얼굴에 멍이 들어도 말 못하는 건 그 교수가 아니면 오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에 93학번으로 입학했다. 빠른 73년생인 그는 당시 입시비리 파문 덕에 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그가 91학번으로 상명여대(현재 상명대)에 입학한 해에 서울대 입시비리가 터졌다. 그는 “상명대 동기 12명 중 7명이 재도전했고 더 점수가 높은 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부정의 한가운데 있었으면 생각지 못했을 일”이라고 했다.

 대학시절 경험이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그의 연기를 뒷받침해줬던 셈이다. 서영우 역에 대해 그는 “악하지만 불쌍한 인간”이라 표현했다. 비뚤어진 동생을 안타까워하는 언니 같은 말투였다. “가진 걸 누리지 못하고 평생 방황한다. 부모의 사랑이 결핍돼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소년 쉼터 얘기를 꺼냈다.

 김혜은은 2010년부터 청소년쉼터협의회 홍보대사를 홀로 맡고 있다. “거기 아이들 얘기를 직접 들으면 이 학생들의 부모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데도 깊은 사정을 잘 모르는 국회의원이나 일반인들은 그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고만 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 그 버림받은 심정을 얘네들을 몰랐다면 죽었다 깨도 몰랐을 거다. 서영우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김혜은 자신도 우여곡절 많은 길을 걸어 왔다. 1996년 미국 연수에서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기상 캐스터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2007년 MBC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성악과 출신 귀부인 역을 맡아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

2012년 2월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이트클럽 여사장 역을 맡은 것이 ‘밀회’의 안판석 PD의 눈에 띄어 캐스팅됐다. “성악 전공 아니었으면 배우 못했겠죠. 느낌 없는 주연보다 굵직한 조연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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