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중공행의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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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밴스」미 국무장관의 중공방문은 두 나라 사이의 현안문제와 국제정세 전반에 관해 상호이해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애초부터 미· 중공접촉은 실무적인 의미의 협상이기에 앞서 일반토론의 성격을 띤 것이었기 때문에 한차례의 「밴스」여행 결과가 그 정도의 한계 안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상하달 것이 없겠다.
특히 관계정상화 문제에 있어 양측이 각자의 원칙만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정도로 끝났다는 것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중공은 중공대로 미국이 자유중국과의 모든 기존관계를 청산하지 않는한 절대로 미국과의 국교수립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그러나 미국 역시 지금 당장에 자유중국과의 모든 국제법적·도의적 유대관계를 일거에 백지화시킬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것은 「도덕」외교를 내세워온 「카터」행정부로서는 만회할 수 없는 「도덕적」자살행위일 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공약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를 전세계에 입증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따져볼 때, 그 문제에 관해 양측이 끄집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당분간 더 유보해둔다』는 정도밖엔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밴스」장관 자신이 피력했듯이 관계정상화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실무적인 절충을 시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유중국의 장래문제에 관해 미·중공간에 모종의 이견조정이 매듭지어지지 않을까 생각되기는 하는 것이다.
타협조건으로 미국은 중공에 자유중국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는다는 약속만 하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약속만 하면 미국은 교역관계를 제외한 자유중국과의 모든 기존관계를 청산하고 중공을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은 그것이「내부문제」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런 약속을 해줄 수 없다고 버틴 것 같다.
여기에 미국의 대 중공자세가 내포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엿보인다. 왜 미국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오랜 우방과의 관계를 희생하고서라도 미국이 중공과 수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미국인들은 그렇게 해야만 중공을 계속 반소 공동전선에 붙들어 매 둘 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중공에 대해 방어용 무기를 제공하자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중공이 지금 「연미」를 하려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전략전술이다. 중공의 군 근대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기 이전까지의 한정적인 전술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일부 논자들이 중공의 진의를 「선의」로 오판한 나머지 자유중국과의 관계를 청산 운운한다는 것은 단견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점 중공과의 접촉에 있어 미국은 좀더 의연한 자세로 나갈 필요가 있겠다. 북경이 벌이는 「인내의 싸움」에 대해 미국이 초조해야할 이유는 조금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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