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 해방32돌…협조 폭 넓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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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음은 「사르워·에디·위보워」 주한「인도네시아」대사가 인니의 독립32주년을 맞아 본보에 기고해온 글이다. <편집자주>
32년 전 1945년8월17일 「인도네시아」국민은 독립국가로의 재생을 선포했다. 그것은 곧 3세기를 넘는 불운한 식민지배시대의 종식을 구획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인도네시아」민족주의 투쟁의 새 단계요, 「혁명전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독립선언 직후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다시 식민지화 하려드는 백인식민세력과 맞닥뜨렸었다.
무력도발에 맞서 무력투쟁을 벌여야했다.
무력투쟁에 주력하다 보니 적절한 정부기구도 국가경제발전도 이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총력투쟁의 결과 49년12월말 승리를 쟁취하고 국제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50년대에 「국민 자체수정」을 시작했고 모든 수단을 동원, 국가기본원리를 변화시키려는 불순세력의 시도도 나타났다.
60년대는 「국가이념」인 「판카·실라」(유일 최고신의 신앙·인간주의·통일·대의정치·사회정의)와 헌법을 보존하려는데 대한 시련이었다.
민족주의와 종교와 공산주의가 혼합된 「사나콤」이 대두되었고 또 「판카·실라」에 기초된 민주주의가 이른바 교도민주주의라는 독재로 둔갑되어 나타났다. 경제문제는 완전히 무시되었으며 대결의 외교정책이 등장했다. 마침내 공산당의 「쿠데타」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를 극복한 66년부터 우리는 독립에 기반을 다진 새로운 시대에 들어갔다. 「새로운 질서의 단계」, 즉 장기적인 국가안정을 기할 국가건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도 우리는 비동맹운동과 「아세안」에 참여함으로써 지역안정과 세계평화에 보다 나은 기초를 부여했다.
우리는 「운크타드」내 77「그룹」·비동맹「그룹」·OPEC, 그리고 「남북대화」로 잘 알려진 국제경제회의에도 참여한다.
한국과의 관계는 비록 일천하지만 우호적이고 긴밀하다. 지난 5월에는 새로운 「인도네시아」대법원 건물이 두 나라 협조의 산물로 봉헌되었다.
경제협조의 전형은 목재기업에서 두드러지며 한국은 고속도로와 주택건설 같은 계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두 나라의 무역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우리 두 나라는 상호국민의 번영과 복지향상에 목표를 둔 개발계획에서 협조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무역뿐 아니라 문화·과학·기술분야에서 협조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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