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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그림으로 만나는 근대도시 파리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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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르주 가랑의 ‘1889년 만국박람회 당시 조명을 밝힌 에펠탑’(1899). 흉물스럽다는 비판도 받았던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으로 최고 볼거리가 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동네가 온통 썩어버렸다고요… (중략) 찢어질 듯 가난해서 이렇게 층층이 위로 겹쳐서 살아가야 하는 파리(Paris)의 구석에서 남자든 여자든 어떻게 깨끗할 수 있겠어요!”

 프랑스 문학가 에밀 졸라가 쓴 소설 『목로주점』(1877)에서 여주인공 제르베즈 마카르는 이렇게 소리친다.

당시 파리 뒷골목은 시궁창이었다. 그후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에펠탑이 세워지고(1889), 다섯번 째 만국박람회(1900)가 큰 성공을 거둔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이 1852년부터 18년간 추진한 대대적 도시 정비 공사 덕이었다. 하지만 세계의 문화 수도라는 명성을 얻게한 건 ‘벨 에포크(belle <00E9>poque·아름다운 시절)’를 열어젖힌 화가들이었다.

 파리는 화가들과 더불어 변모해갔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 특별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은 이를 보여준다. 3일 개막한 전시회엔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르누아르·드가·고갱·세잔·고흐·쇠라의 회화 75점이 전시된다. 아울러 당시의 건축 드로잉, 일본의 영향을 받은 공예품, 파리 뒷골목 스케치 등 100점도 함께 전시된다. 모두 국내 처음 선보인다.

 그간 오르세미술관전은 2000· 2007·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예술의전당 등에서 세 차례 했었다. 이번 전시회의 차별점은 도시의 발전 양상과 예술 작품을 함께 입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점이다.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1907·위)과 폴 고갱의 ‘노란 건초더미’(1889). 문명이 꽃피었던 파리에서 이들은 역설적으로 원시를 동경했다.

 입구에서 만나는 앙리 제르베(1852~1929)의 ‘발테스 드 라 비뉴 부인’(1889)은 당대의 아이콘과 같다. 그녀는 귀족 부인이 아닌 여배우였다. 전시를 기획한 김승익 학예연구사는 “에밀 졸라의 『나나』의 모델이자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에 등장했던 새 시대의 뮤즈”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파리가 도시 계획에 따라 중세의 모습과 결별하는 풍경을 따라간다. 그 사이 넘치는 개성을 주체 못했던 모네·드가·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왕실 위주의 화풍을 벗어나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며 그린 그림들이 전시된다. 그들의 행보도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파리와 닮았다. 모네(1840~1926)의 ‘양산을 쓴 여인’(1886), 고갱(1848~1903)의 ‘노란 건초더미’(1889), 세잔(1839~1906)의 ‘생트 빅투아르 산’(1890) 등은 이 과정에서 탄생한 명작이다.

 이번 전시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앙리 루소(1844~1910)의 ‘뱀을 부리는 여인’(1907)이다.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양 우거진 수풀 속 검은 머리를 짙게 드리운 여인이 피리를 불어 뱀을 유혹한다. 40대 후반에서야 그는 예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탓에 원근법에 서툴렀던 그의 그림이 오히려 독특하단 반응을 얻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오르세미술관 측에서 특별히 해외반출금지규정을 해제했다. 8월31일까지. 성인 1만2000원. 02-325-1077~8.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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