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란 말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내가 사는 동네에는 프랑스 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학교 정문 앞은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로 붐비곤 한다. 처음에는 무슨 행사가 있나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매일 오후,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면 언제나 같은 광경이 펼쳐지곤 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하교할 때 반드시 부모를 동반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지 못할 경우 반드시 대리인을 보내야 하고, 그 내용을 학교에 알려야 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아무리 가까워도 이 규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부모로서는 몹시 불편한 일이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이런 불편함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생각나는 것이 하나 또 있다. 막내가 초등학생일 때 함께 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문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아이와 함께 뒷자리에 앉았는데, 기사가 내리란다. 기사는 트렁크에서 어린이용 안전시트를 꺼내 뒷좌석에 설치한 후, 아이를 앉히고 직접 벨트를 매주었다. 그는 아이가 안전하게 앉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택시를 출발시켰다.

선진국으로 꼽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안전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 임산부, 노인에 대한 안전조치는 너무나 철저해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나라 아이들이 부러웠다. 돈이나 효율보다 생명과 안전을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부러웠다. 선진국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 아닐까.

유럽 여행을 같이했던 그 아이가 아직 배 속에 있을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사고였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시신 수습과 인명구조가 이루어지는 사고 현장 상황을 생중계했다. 졸지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통곡이 연일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살아야 할 세상을 걱정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는 세상에 아이를 내보낸 것이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마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 모두가 재발 방지를 철석같이 약속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 약속을 믿었다.

그런데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씨랜드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던 우리 딸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불 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어린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부모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때도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막내딸이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또 참사가 일어났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 수백 명이 물속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간 것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해에 태어난 아이가 세월이 흘러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동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씨랜드, 서해훼리호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그 꽃다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아이를 내보낸 죄 많은 부모다. 정말로 아이들이 불쌍해 견딜 수가 없다. 어쩌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을까. 영정 사진 속 꽃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통곡이 밀려온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다.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이 수장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아!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란 말인가!

나는 자식을 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한다. 고위 관료,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경찰, 언론 등 이른바 기득권 세력들의 먹이사슬처럼 얽히고설킨 그 더럽고 추잡한 부패의 카르텔에 분노한다. 이들이 눈을 벌겋게 뜨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동안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우리가 정작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아이들아! 혹시 무능한 어른들이 이들을 응징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너희들만큼은 절대로 이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라.

▷ 진회숙 -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hwesoo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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