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식 '세모 왕국' 부활 원천봉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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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세모는 1997년 8월 3673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안고 부도를 낸 뒤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원과 채권단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1900억원의 빚을 면제·출자전환 등을 통해 사실상 탕감해줬다. 빚을 떨어내 우량기업으로 변신한 세모를 불과 168억원에 되산 사람은 유병언(73) 전 세모 회장이었다. 최측근을 대표로 한 회사들을 앞세워서였다. 또 세모의 조선사업부는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에 인수됐다. 이는 빚에 쪼들려 해체 위기에 빠졌던 세모 왕국이 부활하는 원동력이 됐다.

 앞으로는 이 같은 편법 부활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부실경영 책임이 있는 옛 사주의 페이퍼컴퍼니 또는 제3자를 내세운 인수를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키로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8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의 지시로 다음 주 개선안을 발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인수합병(M&A)을 통한 법정관리 기업 매각 시 실무를 총괄하는 매각주관사(회계법인)가 인수기업의 성격과 자금 출처 등을 강제조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하게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옛 사주의 우회인수를 막지 못했을 때는 매각주관 업무나 자산실사에 1~2년 동안 참여할 수 없도록 자격을 박탈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도 매각주관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입찰안내서에 ‘인수희망 기업은 옛 사주와 연관성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 하고 추후 의심되는 정황이 나올 경우 정밀조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이와 함께 통합도산법에 따라 도입된 기존 경영진 관리인 임명제도(DIP)의 조건을 대폭 강화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경영진은 원천적으로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할 방침이다. 기존 경영진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한 후에도 부적절한 부분이 발견되면 제3자로 즉각 교체하는 식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법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제3자 관리인 인력 풀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회사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세모같이 기존 경영진 관련 인물이 관리인으로 선임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조사위원회를 강화해 회사 측이 제출하는 회계자료를 정밀하게 점검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모는 법정관리 와중에도 다판다 등을 통해 유 전 회장 측에 수수료 명목으로 500억원 이상 퍼주는 등 평소 경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법원은 다음 주 초 개선안이 확정되면 각 지방법원이 운영 중인 업무준칙에 반영해 시행할 예정이다.

최현철·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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