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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에 밀리는 「토종꿀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재래종 한봉이 사라져간다. 한때 농가부업으로 각광을 받던 토종봉이 양봉에 밀려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전북 완주군 동상면과 강원도 인제군 북면 등 한봉 고장으로 알려진 이곳 주민들은 보호지구설정과 함께 과학적인 양봉방법의 모색이 시급하다고 말하고있다.
전국 8대 오지의 하나인 전북 완주군 동상면 일대 야산에는 밤나무·「아카시아」나무 등 꽃가루가 풍부한 각종 수목과 자연생화초가 서식하고 있어 한봉의 입지조건이 좋은 곳.
집집마다 재래식 벌통을 만들어 부업으로 한봉을 기르기 시작, 수십년 동안 가족들의 건강관리와 생계비 조달 등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아왔다.
그러나 3년전부터 전국각지에서 전문적인 양봉업자들이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들어 한봉 농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군세가 월등히 강하고 생활력이 뛰어난 양봉은 수가 적은 한봉을 압도하기 마련. 꿀을 채집할 틈을 얻지 못한 한봉은 결국 꿀을 만들지 못하고 시들어 멸종위기를 맞게된 것.
이 마을 박진옥씨(57·동상면 하율리 시평마을)는 75년까지 한봉 5통을 길러왔으나 최근 양봉에 눌리거나 굶어죽어 3통으로 줄어들었고 벌꿀 생산량도 연 7l에서 절반뿐인 3·5l로 감소됐다고 울상을 지었다.
또 이정선씨(37·동상면 수만리 다자미마을)도 재작년에 3통이었던 한봉이 해마다 줄어 지금은 2통도 채 차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상면 일대 2백여 한봉 농가는 5백여 통을 기르다 불과 1년반 사이에 40%가 줄어든 3백여 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강원도는 재래종 한봉의 보호책으로 74년 인제군 북면 용대리·한계리와 양양군서면서림·오색지구를 토종봉 보호지구로 선정, 반경 4㎞이내에선 양봉사육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한봉 번식에 대한 과학적인 방법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보호지구마저도 양봉이 활개쳐 멸종직전에 놓여있다는 것.
결국 도일원에는 2만6천8백81군의 양봉이 위세를 떨쳐 5년전 1천3백여 군의 한봉이 최근 4백여 군으로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양봉의 무제한 서식으로 밀원을 빼앗겨 4, 5년 안에 한봉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있다.
한봉은 양봉처럼 큰비용과 노력 없이도 농가에서 손쉽게 기를 수 있는 부업. 1통에서 연간1·8∼3l의 꿀을 생산, 5만∼1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한봉을 기르는 김용만씨 (49·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는 『한봉 보호를 위해 인력번식 및 이동 등의 과학화가 시급하다』고 지적, 많은 밀원을 사장하지 말고 한봉을 집단화하여 보호구역을 선정, 양봉과 병존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봉의 구제처방을 제시했다. <전주·속초=이현천·장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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