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도 「억지」도 없이…북괴 거드름만-미 헬기 승무원·유해가 돌아오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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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문점=조동국 기자】북괴포화에 격추된 미군「헬」기의 승무원이 1명의 부상자와 3명의 유해로 돌아온 16일 하오의 판문점은 긴장감은 감돌지 않았으나 시종 침통한 분위기였다.
약간의 부상으로 혼자 걸어나온 「슈앙케」준위도 57시간30분 동안 억류되었던 악몽이 덜깬 듯, 또는 동료 3명중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것이 미안한 듯 얼굴에는 표정하나 없었다.
이날의 정전위 본회의는 보통 때와는 달리 「유엔」군측의 항의도, 북괴측의 억지와 선전도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으며 「유엔」군측의 모두 양보하는 저자세와 북괴측의 거드름 피는 고자세만이 두드러져 보였다.
이같은 사건에서 사망자유해는 2∼3일 안에 송환한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같이 생존승무원까지 한꺼번에 빨리 돌려준 것도 이례적.
북괴측은 『「유엔」측이 영공침범을 시인한 점에 유의, 승무원 송환을 고려하겠다』고 「유엔」측을 초조하게 만들면서도 이미 생존자와 유해를 판문각 뒤에 데려다 놓고 송환준비를 끝낸 듯 했다.
하오 7시30분 대기했던 북괴 「트럭」이 판문각 앞뜰에 이미 입관된 3구의 유해를 내려놓았다.
북괴측 비서장 최가 시체를 확인하라고 하자 「유엔」군측 비서장 「매클레인」대령은 반쯤 못이 박힌 목관을 가리키며 뚜껑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매클레인」대령은 피격승무원과 같은 제19비행대대의 동료인 「새비스」준위와 관속의 흰 광목을 들추고 유해를 확인했다.
한국측 장교를 포함한 「유엔」군측 군사정전위원 6명(미·영·가·호·태)이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의 「시멘트」홈으로 된 군사분계선까지 유해를 운구했고 여기서 「유엔」군측 경비병들이 옮겨받자 「크로비스」대위가 관위에 성조기를 덮었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운구하는 경비병들의 군화소리·「카메라」의 「셔터」소리만이 침묵을 깼다.
먼저 2구가 한 「앰블런스」에 실리고 나머지 1구는 다른 「앰블런스」에 실렸다. 「매클레인」대령이 인수증에 서명을 하고 북괴비서장에게 건넸다.
이어 「매클레인」대령은 「슈앙케」준위를 인수하러 다시 분계선을 넘어 판문각 앞으로 갔다. 「슈앙케」준위는 북괴측이 태워온 중공제 검은 「세단」 뒷좌석에서 내렸다.
「슈앙케」 준위는 모자를 쓰지 않은 「헬」기 조종사복장 그대로였으며 오른쪽 턱밑에 5㎝쯤 찢어진 흔적만 보였다.
「매클레인」대령이 하오7시59분 「슈앙케」준위의 팔을 붙잡고 분계선을 넘음으로써 생존자와 3구의 유해인수는 29분만에 모두 끝났다. 「슈앙케」준위가 「매클레인」대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앰블런스」에 오른 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하오8시3분 양측 비서장은 서로 악수도 없이 되돌아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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