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북 전방 3개 군단사령부 인근서 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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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와 백령도, 강원도 삼척에서 추락한 채 발견된 무인기 3대가 모두 북한에서 발진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8일 “지난달 14일부터 한·미 공동조사전담팀을 구성해 과학적 조사를 실시했다”며 “무인기에 탑재됐던 메모리 칩에 저장된 비행 관련 기록을 분석한 결과 황해남도 해주와 개성, 강원도 평강에서 이륙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방부의 중간조사 결과 발표 때는 무인기가 북한에서 발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 증거만 나왔지만 이번 GPS 분석을 통해 무인기 침투가 북한 소행임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무인기의 항로는 북한 출발→남쪽 비행→북한 복귀로 입력돼 있었다. 조사팀장을 맡았던 김종성 국방과학연구소 무인기 사업단장은 “메모리 칩에 저장된 비행계획과 남측 지역에서 실제로 촬영한 지역이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삼척에서 발견된 무인기의 경우 사진촬영 자료가 없어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2대는 비행 항로와 촬영 지역도 모두 일치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지난해 3월 24일 북한군 제1501군부대를 현지지도하며 “적정(敵情) 감시를 위한 정찰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라”며 “다양한 무인기를 활용한 적 종심정찰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가 단독 보도한 북한 무인기 기사들. 왼쪽부터 북한 말 ‘기용날자’의 존재(4월 2일자), 영상 송신장치의 존재(3일자), 자이로센서가 북한산(4일자)이라는 사실을 보도했다.

 ◆군사 시설 정찰이 목적=3월 24일 파주에 추락한 무인기에 입력된 출발과 도착 지점은 개성 북서쪽 5㎞ 지역이다. 같은 달 31일 백령도에서 추락한 무인기의 출발과 도착 지점은 해주 남동쪽 27㎞ 지점의 황해남도 청단군 초암동이다. 또 지난달 6일 삼척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북한 강원도 평강 동쪽 17㎞ 탑거리 지역에서 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지역은 각각 북한군 4(해주)·2(평산)·5군단(평강)사령부 인근이다. 서북도서 지역과 수도권, 중부전선을 관할하는 군사적 요충지다. 군은 북한군이 서북도서 지역과 수도권, 중부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에 대한 정보와 주요 시설물들을 정찰할 목적으로 무인기를 띄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엔진 이상, 연료 부족 추락한 듯=좌표 분석 결과 세 무인기 모두 출발 직후 나선형 모양을 그리며 고도 1㎞ 이상을 올라간 뒤 남쪽으로 향했다. 파주 무인기의 예정 비행거리는 133㎞였다. 휴전선을 넘어 서울시청까지 직선으로 시속 120㎞로 남하한 뒤 청와대 인근에서 유턴해 곧바로 복귀하는 항로다. 이 무인기는 평균 1.5㎞ 고도에서 모두 193장을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와 서울시청, 파주와 일산 인근의 군부대 모습이 담겨 있다. 김 단장은 “연료가 1.9L 이상 남아 있었고 고도가 낮아진 점을 고려하면 엔진 이상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23㎞를 비행토록 예정됐던 백령도 무인기는 119장의 사진을 찍었다. 서해 바다를 직선으로 건넌 뒤 소청도에 이르러서는 지그재그 비행을 하며 섬 전체를 스캔하듯 날았다. 이후 다시 대청도로 직진한 뒤 지그재그로 사진촬영을 하고 백령도로 이동했다 추락했다. 이곳엔 우리 해병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어 부대 위치와 무기 배치 등의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령도 상공에 도달한 직후 연료 부족으로 추락하다 나무와 충돌한 뒤 추락했다.

 삼척 무인기는 우리 전방 부대들이 위치한 화천과 춘천, 사내, 근남 지역을 2.5㎞ 고도에서 150㎞를 비행한 뒤 복귀토록 돼 있었다. 하지만 춘천 인근에서 예정됐던 서쪽으로 선회하지 못하고 남동쪽으로 150여㎞를 날아가 삼척 야산에 추락했다. 군 당국은 방향조종 기능이 고장 나고 연료가 부족해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해 국방부는 “정전협정과 남북 불가침 합의 위반”이라며 “정전협정에 근거해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강력히 경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공 침범은 국제법과 유엔헌장 위반이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 보고할 수도 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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