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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기업의 도산(사고사와 자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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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도산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겉으로 보아 그렇게 나타났을 뿐이다. 이미 공개적인 도산 선언을 하기 전에 그 기업은 속으로 멍들어 있었던 것이며 다만 외부 사람들이 몰랐던 것이다.

<「불황형」이 으뜸>
마찬가지로 기업이 단지 하나의 원인만으로 도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러 원인들이 서로 얽혀 심화되면서 도산이라는 파국사태로 침몰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도산 중 가장 으뜸 되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기업풍토나 기업내부의 경영체질에 따라 가변적이다. 서구에선 차금경영에 의한 확대정책이 기업 도산의 가장 큰 촉발요인이 된다. 그러나 동양에선 차금경영이 기업확대의 발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선 그렇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요체는 그 기업이 존재하는 사회여건을 적절히 파악, 이를 가장 잘 이용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일·쇼크」후 기업 도산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불황형 도산의 급증이다. 불황형 도산이란 판매부진이나 매출금 회수난 등과 같이 전면적 불황기조 때문에 기업이 견디다 못해 도산하는 것을 말한다.
고도성장기엔 설비과대투자로 인한 도산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불황기엔 전반적인 소비침체로 판매부진을 초래하고 이는 연쇄도산으로 연결된다. 흔히 『설비투자는 불황기에 과감히 해야한다』는 말이 묘수처럼 유행되고있다. 불황 때 설비투자를 해야 경기회복기에 한발 앞설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일리는 있으나 최근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옛날과 같이 불황기가 장기화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옛날과 달라 요즘의 설비투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만약 설비투자의 「타이밍」을 그르치면 기업경영엔 치명상이 된다. 따라서 설비투자의 「타이밍」을 정확히 잡는 것이야말로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결정의 하나가 된다.

<일선 섬유가 취약>
설비투자의 「타이밍」을 잡는데는 정교한 「컴퓨터」도 별 구실을 못한다.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경영자의 직관에 의할 수밖에 없다. 설비투자에 너무 신중하다보면 어느새 「라이벌」기업에 뒤지고 만다.
4백억 「엔」의 부채를 안고 쓰러져 일본최대의 도산이라 일컫는 동양「펄프」의 도산도 무리한 설비투자에 결정적 원인이 있다.
불황기 투자의 묘수에 현혹되어 「오일·쇼크」후의 불황기에 무려 1백억 「엔」의 설비투자를 강행한 결과 빛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이자를 갚기 위한 기채를 계속하다 결국 손을 들고만 것이다.
고도성장기의 도산엔 사고사가 많다. 기업도 그런 대로 잘 돌아가고 또 전망도 좋은데 일시적인 자금회전이 안되거나 어떤 고비를 못 넘겨 도산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고도성장기엔 흑자 도산도 나온다.
그러나 불황기엔 낙엽이 말라죽듯 점차 몰락해 가는 자연사가 많다. 당장 물건이 안 팔리는데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하고 그렇다고 신규사업도 개척되지 않고 하여 기업이 파국으로 한 발짝씩 다가가는 「케이스」다.
요즘 일본에서의 섬유계와 「패션」계에 특히 많이 발생하고있다. 또 최근엔 타살형 수출 도산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이 외국의 수입규제 등으로 하루아침에 주 시장을 잃어 도산으로 연결되는 「케이스」다. 보호무역 「무드」가 고조되고 있는 요즘 특히 경계해야할 도산이다.
일본에선 전탁·전자시계 등이 이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선 시장의 다변화, 상품의 다각화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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