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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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옛날 어린이가 혼자서 여행을 했다면 어디서 묵었을까? 애당초 옛날에는 어린이가 혼자서 여행하는 일이란 생각할 수 없다. 혹 있었다 하더라도 객지에서 밤을 새워야 할만큼 먼길을 가지는 않는다.
도시 어린이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없었다. 목로집·주막집도 모두 어른을 위한 여관이다. 이밖에도 역참이 있었지만 그것도 어린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옛 어린이들은 매우 불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누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그네 길이 란 게 감미로운 향수와 애틋한 자극을 일깨워 주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여관은 그런 나그네길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여관은 꼭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 고장의 멋과 냄새가 풍기고 편히 단잠을 자게 해주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어머니를 찾아서 3만리>라는 「텔리비전」영화를 보고있던 한 어린이가 그 고아처럼 멀리 멀리 여행해봤으면 좋겠다는 감상을 말했다.
영화 속의 고아는 거의 매일 밤을 노숙했다. 그래도 부럽게 보이는 모양이다.
시골 어린이들의 꿈의 나그네길은 서울 가는 것이다. 서울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어린이들이 품고있는 꿈의 전부일 때가 많다.
아닌게 아니라 서울의 앞길은 시골 어린이들에게 있어 경이의 세계가 된다. 지하철 고층건물 고궁…. 아무리 여관방 속이 더럽다해도 어린이는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여관방이 깨끗하고 아이들이 즐거운 「나그네 길」의 수확을 나눠가며 잠들 수 있다면 교육적으로는 물론 더욱 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체육대회를 위해 서울에 올라온 시골선수단들이며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찾아드는 여관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대개가 추잡한 뒷골목 윤락가의 싸구려 여인숙들이다. 이런 곳은 서울의 어린이들도 얼씬하지 못하는 제한구역이다.
인솔교사는 돈이 모자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보도를 위해 저녁이면 여관방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오는 수학여행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궁색한 여행을 허가하는 교장의 처사도 알 수가 없다.
어느 선수단에서는 또 여관을 알선한 관광여행사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곳 교육위원회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어린이들의 나그네길은 이래서 마냥 더럽혀진다. 마냥 부풀었던 어린이들의 꿈이 이리하여 무참하게 깨어진다. 그 상처는 뭣으로도 아물어질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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