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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켜진 200m … '3중 제동장치' 작동 안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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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일 오후 3시30분 2호선 상왕십리역. 잠실 방향으로 가는 2258호 열차가 플랫폼에서 승객을 내려준 뒤 출발하려는 중이었다. 그때 뒤따라오던 2260호 열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앞선 열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추돌 순간 앞 열차의 차량 연결기가 파손되고 후속 열차의 차량 2량이 탈선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탈선한 차량에선 총 3개의 바퀴가 선로를 이탈해 빠져나갔다.

 사고 후 서울메트로 정수영 운영본부장은 “앞선 열차의 상태를 알려 주는 신호가 ‘진행’에서 갑자기 ‘정지’로 바뀌면서 후속 열차가 뒤늦게 (수동)제동장치를 작동했지만 안전거리가 확보되지 못해 추돌했다”며 “자동안전거리 유지장치가 고장 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지점이 곡선 주로여서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서울메트로 조성근 운전차장은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차량 점검에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나왔다”며 “사고지점은 커브 구간이어서 기관사가 최선을 다해 (수동)제어하려 했지만 제동거리가 모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하철에 겹겹이 설치된 안전장치들이 일순간에 무력화된 사고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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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뒤 열차 간격이 200m 이하로 좁혀지면 작동하는 ‘열차 자동정지장치’는 추돌을 막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철도에서는 안전거리를 ‘폐색(閉塞)구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2260호 열차는 앞 열차가 폐색구간에 들어와 있음에도 정지하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대 최규형 교수는 “열차 노후화에 따른 시스템 결함으로 보인다”며 “2호선 전체의 제어시스템을 개량했다고 해도 오래된 열차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260호는 1990년 제조된 열차다.

 익명을 원한 서울메트로 정비처 직원은 “20년이 넘은 구형 전동차와 신형 전동차가 혼재돼 있다 보니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70대 노인에게 인공관절을 달아 줬으니 마라톤을 뛰라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2호선의 경우 20년 이상 차량의 비율이 57.8%(478대)로 절반을 넘는다. 운행차량 모두가 20년이 넘는(1993~95년 도입) 4호선 다음으로 높다.

 중앙에서 지하철을 통제하는 관제실도 제 역할을 못했다. 자동안전장치가 작동하지 못했을 경우 관제실은 ▶무선통신을 이용해 기관사에게 경고방송을 하고 ▶원격 제어시스템을 가동해 열차를 강제로 정차시켜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작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관제실은 사고 초기 발생시간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처음엔 오후 3시32분 추돌했다고 했지만 이후 소방서 신고시간을 기준으로 3시30분으로 정정했다. 철도기술연구원 김용규 수석연구원은 “지금 시스템상 완벽한 실시간 제어는 불가능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사고 발생 30분 전인 오후 3시 서울 방배동 서울메트로 본사 회의실에서는 ‘서울시 주관 총체적 안전 이행실태 점검’이 이뤄지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사고 문제가 부각되자 서울시청에서 서울메트로의 안전점검 내용을 보고받는 자리였다.

강인식·이서준·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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