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이전의 적법성 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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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가 건축법을 이용해 도심에 있는 사설 학원의 강남 이전을 강행하려는 것은 발상이나 방식이 온당치 못한 느낌이다.
발표된 내용을 보면 서울시는 도심에 있는 48개 학원을 강남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우선 그중 건물 용도에 위반이 있는 36개 학원에 대해 이전을 안 하면 폐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강북 인구의 소산과 교통 혼잡의 완화가 그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시된 이유와 그 실현 방식에 모두 문젯점이 적지 않은 듯 하다.
우선 도심에 있는 학원이 강남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과연 강북 인구가 소산되고 교통혼잡이 완화 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한마디로 강북 인구의 소산책으로서 학원의 강남 이전은 거의 효과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차피 학원은 생활의 터전인 주택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다니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업주를 비롯한 종사자들의 생활근거 마저 학원이 옮긴다고 해서 꼭 따라 옮겨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혹시 학원 부근에서 하숙을 하는 지방 학생 중에 학원을 따라 옮길 사람이 있을는지 모겠으나 그 비율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일 것이 틀림없다.
또 학원의 강남 이전으로 서울의 교통난이 완화될는지도 의심스럽다. 지금같이 인문계 학원이 번창할 정도로 과외공부에 대한 수요가 계속되는 한 학원이 강남으로 이전한다 해도 개별 학원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총체적으로 학원에 다니는 학생 수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학생 수에 별 변화가 없고, 그렇다고 학생들의 집도 그대로라면 통학생들의 교통량도 줄어들 리가 없다.
오히려 강북에 사는 주민이 훨씬 많은 지금 같은 상태에서는 강북에서 강남을 오가느라 차를 이용하는 시간과 거리, 다시 말해 교통량이 늘어나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다만 도심에서 내리고 타는 교통 혼잡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 효과는 없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도심의 교통 혼잡을 줄이려 한다면 구태여 무리한 학원의 강제 이전보다는「버스」노선의 도심 통과나 정류장 수를 줄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효과가 있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어떤 법규나 행정단속 기준을 본래의 목적과 다른 데에 변태 적용하는데서 오는 무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단속을 위해 시설 기준이나 보건 위생검사를 활용한다든가, 세무 조사를 한다든가. 또 이번같이 사설학원을 강남으로 옮기게 하기 위해 건축 법규를 적용한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이런 방식은 적용할 법규와 행정당국이 의도한 목적이 잘 맞지 않는데서 엉뚱한 부작용을 낳기 쉽다. 이번만 해도 당국의 의도는 48개의 학원을 모두 강남으로 이전시킬 생각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강권이 발동될 수 있는 대상은 36개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12개의 학원은 결과적으로 이유없이 득을 보게 된다. 이는 당국의 원래의 의도와도 어긋날 뿐 더러 이중의 불공평을 초래한다.
때문에 어떤 문제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정정당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충분한 검토를 거쳐 합리적인 정책이 결정되어야 하며 또 그 실현을 위해서도 변법이 아닌 합목적이고 적법한 절차가 적용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행정은 예측 가능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요 법치 행정이다. 행정관정이 법규나 행정 규칙을 원래의 목적 이외에 자의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행정은 예측 가능성을 잃게 될 염려가 크다.
사설 학원의 강남 이전 방식의 재고와 아울러 전반적으로 행정처리 과정에서 법규의 합목적적인 운영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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