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백악관은 요즘 며칠사이에 우리가 궁금했던 여러 겹의「베일」을 벗겨 보였다. 한반도에 대한 백악관의 친선은 새 대통령을 맞은지 40일이 지나도록 내내「베일」속에만 가려있었다.
백악관의「베일」중에 은근히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역시 주한미군 문제와 북괴에 대한 공식 태도이다. 이것은 모두 꼬리를 무는 소문에서만 그 윤곽이 짐작되던 문제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북괴에 대한 미국의 시선은 끝내 궁금했다. 김일성은「카터」대통령의 선거운동 중에도 제3국인「파키스탄」을 통해 옆구리를 간지럽힐 정도의 신호를 보냈었다는 외신이 있었다.
끝내는「카터」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역시 그 제3국을 통해 회신을 보냈다는 외신도 있었다. 이처럼 일연의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발표된「카터」의 북괴에 대한 미국인 여행제한조치 해제는 놀랍고 충격적이다.
미국은 한국 동난 중에 3만3천수백명의 미국 병사를 바쳤다. 「피와 땀」만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물질까지도 바쳤다. 그것은 한국을 지기는 것이 곧 자신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뜻과 일치한다고 미국은 믿었기 때문이다.
북괴는 의심할 바 없는 자유세계의 적이며, 또 미국의 적임을 미국국민도 확신했기 때문에 피와 땀과 세금을 바친 것이 아니겠는가.
상황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뀌어진 것이 없다. 북괴는 여전히 미국을 저주하며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주변의 정세도 마찬가지다. 소련이나 중공은 똑같은 도식의「제스처」마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쉽게 보여줄 것 같은 맥락마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북괴에 어색한 몸짓을 보여주는 셈이다.
과연 미국이 얻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것은 인권과「모럴」을 존중하는「카터」의 정치철학과도 거리가 멀다. 여행제한 조치가 동시에 해제된「캄보디아」「베트남」은 북괴와 똑같이 악명 높은 인권말살 지역이다. 바로 이들에 대한 호의의 표시는「모럴」과 인권비중을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실제로 51년부터 계속해온 북괴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시민의 평양 방문을 내버려두었었다. 그곳을 다녀 온 언론인·학자들은 이미 상당수에 이른다. 새삼 잠겨있지도 않은 문을 열어 놓으려는「제스처」는 어색해 보이며 공연히 우방에 충격을 안겨줄 뿐이다.
백악관은「베일」을 벗어나도 여전히 우리 눈엔 모호해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