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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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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인구 과밀은 문제자체의 거대성과 복잡성 때문에 정부정책으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괴물로 생각되던 것이 어제까지의 사정이었음을 상기할 때 새 행정수도 건설 안은 수도권 인구문제에 대한 종래의 정책적 무기력으로부터 극적인 전환을 말한다. 수도권 인구과밀이 단지 서울행정구역 안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토공간에서 차지하는 큰 비중 때문에 수도권 인구억제책의 한 정점인 이 안이 착수되면 국토공간구조에 커다란 변혁을 안겨다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 행정수도의 입지는 국내의 지정에 중대한 상징적 변화를 줄 것이다. 서울서 1시간정도의 교통시간대는 필시 금강수계일 것이라는 지상의 관측이 사실이라면 새 도시의 입지는 대체로 분단된 남한의 모든 곳으로부터 지리적인 등거리에 자리잡는 셈이다. 통일한국의 중심이긴 하지만 오늘과 같이 국토분단이 장기화될 상황에서는 남한의 지리적 중심이 아닌 서울에 중앙정부가 자리한다는 사실은 중앙정부의 활동이 특정지역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오해를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행정수도가 새로이 국토의 중앙에 자리잡으면 중앙행정기능은 국토상의 모든 국민생활에 등거리에 있다는 의미있는 상징을 줄 수 있다.
한편 공산북한의 흑색선전은 항상 남한이 호전성을 띤 것처럼 세계에 인식시키려고 해왔음을 기억할 때 국제사회 속의 지정에도 유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캐슈미르」영유권을 두고 인도와 대치중인 「파키스탄」은 영유권 쟁취의 기선확보를 중요 이유로 해서 「카라치」로부터 「인·파」국경지대인 「이슬라마바드」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이 선례와는 정반대로 남북대치의 휴전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리잡을 새 행정수도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평화적 자세를 세계에 물리적으로 실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새 도시가 계획대로 건설되면 국토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크게 한강 및 금강수계의 서울대권과 낙동강 및 영산강수계의 부산대권으로 양분되는 국토경제는 전국 도시인구의 6할이 전자지역에, 4할이 후자지역에 몰려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정부투자가 부산대권에 우선하고, 행정기능을 새 도시로 옮겨가서 계속 서울로 유입될 이동인구를 국토의 중간지점에서 차단하면 서기 2천년쯤에는 전국 도시인구가 양대권에 반반으로 균분되고 따라서 국토의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째, 고도성장을 이룩한 발전도상국은 경제발전의 한 대가로 지역간 발전격차를 경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60년대 이후 나타나고 있는 지역간 격차는 한마디로 서울이 대표하는 대도시지역과 나머지 지역간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격차의 근인은 특히 중추정부기능이 서울에 모여있고 모든 사회가치가 거기에 따라서 자리잡는 데서 비롯하는 까닭에 정부기능 가운데 행정기능의 장소 이전은 정책적 난제의 하나인 격차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80년대의 문턱에 여러 형태의 격차해소를 본격적인 정책과제로 채택한 것이고 보면 새 행정수도의 건설은「사회개발의 공간적 접근」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국민생활은 공간선택의 단조로움을 면치 못했다.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디거나 생활 향상을 기도하는 대부분의 국민은 장래성 있는 삶의 터전으로 으례 서울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까닭에 새 행정수도의 건설은 앞으로 삶의 터전 선택에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일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경험에서 보아 국가경제 성장보다는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가 훨씬 힘든 일이다. 북부의 공업지역과 남부의 농업지역간의 격심한 지역격차의 해소에 진력하는 「이탈리아」, 「브라질리아」건설로 「리오」의 대도시 혼잡을 완화하려던 「브라질」이슬라마바드로 수도를 옮겨 서정쇄신을 도모하려던 「파기스탄」, 「파리」에만 편중되어있는 사회가치를 국토상에 균분하려던 「프랑스」등의 국토개발정책 목표를 모두 담고있는 이번 새 행정수도 건설 안은 야심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힘든 정책임에 틀림없다.
전무한 국토개발정책의 추진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겠지만 창조적인 실험을 거듭하면 새 행정수도의 건설은 우리의 삶의 터전인 국토공간을 발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끝> 【김형국<서울대 환경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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