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과 도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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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 중앙정보국 (CIA)이 지난 20년간 17명의 외국지도자들에게 비밀 자금을 제공했다는 폭로는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있다. 이 사실이 폭로되자 미국의「카터」대통령은 CIA의 해외정보활동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굵직굵직한 외국지도자들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선정성 때문에 새삼 CIA의 자금제공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는 되었지만 이같은 풍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성격상 내밀했어야할 일이 이렇게 폭로되고 보니 그 파급 영향은 걷잡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앞으로의 CIA 활동도 문제려니와 비밀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수많은 외국지도자들의 국내·국제적인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개중에는 이로 인해 국내 정치적 기반마저 흔들리게 될 사람도 있겠고, 전반적으로 「미CIA의 앞잡이」란 불명예 때문에 국제적인 발언권이 떨어질 위험이 크다.
그렇게되면 이들은 이러한 불명예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의식적으로 반미적인 성향을 보이게될 우려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어떻든「카터」 미행정부의 처지는 곤란하게 됐다. 우선 비밀자금을 받은 것으로 폭로된 외국지도자들의 거센 반발로 외교정책 수행에 적지 않은 제약이 생길 것이다.
당장 중동문제해결을 위한 「밴스」국무장관의 중동순방외교에 암영이 깃들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에 더해 이것이「카터」 행정부의 인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못마땅해하던 소련 등 동구권에 의해 절호의 대미공격 자료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내부적 정책결정의 문제로서도 도덕정치·도덕외교를 표방해온 「카터」행정부로서는 CIA의 활동을 둘러싸고 「딜레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카터」씨가 해외정보활동에 대해 전면재검토를 지시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정치와 외교에서 도덕성을 강조해온 「카터」대통령의 의욕을 높이 평가한다. 그렇지만 국익을 수호신장하기 위한 외교정책 수행과정에서 도덕성의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의욕에 정비례할 수 있을까는 두고 볼 일이다. 개인이나 국가의 행위를 도덕성의 기준에서 판단하면 대체로 도덕적(Moral)· 도덕적 중성(Amoral) 부도덕(Immoral)의 3개의 범로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동안 폭로된 미CIA의 해외활동을 보면 부도덕한 방법의 채택마저도 불사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 금할 수 없는 형편이다. 비단 미CIA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외교활동가운데서도 부도덕한 요소는 적지 않았다.
외국지도자에 대한 암살계획이라든가, 유명한 아편전쟁 등은 그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도덕한 대외활동이 지양되었으면 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이자 역사의 진전방향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국가목적의 수행과정이 부도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덕성의 원리에 바탕을 두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겠지만, 지금 같은 동서의 치열한 경쟁 하에서 과연 외교가 도덕만으로 지탱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비밀대외활동을 없앨 수 없는 이상 가능한 선택은 적극적으로 부도덕한 것과 도덕적으로 중성적인 것을 구별해 부도덕을 배재하는 정도일 것이다. 부도덕과 도덕적 중성의 차이마저 구별하지 않는 과잉 도덕지향이 자칫 거센 반동으로 인해 결국 부도덕까지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경험은 결코 지난날의 일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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