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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철마」를 기념품으로"|기관차·역사매입 열올리는 서독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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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랑크푸르트=엄효현 특파원】서독 정부가 최근 국영철도의 단계적 정리방침에 따라 역사·기관차·화차·객차 등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자 철마에 향수를 느끼는 많은 애호가 등이 다투어 이를 구입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서독 철도 당국은 2백50억「마르크」(5조 억 원)라는 엄청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어 근년에 그 해결의 고육지책으로 수익성이 없는 지 선의 과감한 정리와 그 부대시설을 폐기, 매각하기로 방침을 세웠던 것.
이런 결정이 알려지자 맨 먼저「이스라엘」이 기관차·화차·객차 등의 대량구입을 희망한데 이어 수많은 독일인 철도「팬」들이 특히 기관차를 기념품용으로 서로 구입하겠다고 경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중고자동차 판매업소를 통해 팔리고 있는 기관차한대 값은 약 4백 만원.
이 기관차를 기념물로 보존하겠다는 희망자가 너무 많아 곧 동이 날 지경이라고 철도 당국은 즐거운 비명이다.
기관차 다음으로 인기 높은 품목은 역사. 큼직한 정거장 역사에 옛 모습 그대로 놓인 시설물들, 9천 평의 넓은 공원에 쭉 뻗어 있는 5km의 철로, 거기에 다섯 개의 철교까지 딸린 아름다운 전원풍경의 정거장 값이 2천4백40만원 정도라면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정거장을 구입. 푸른 정원 속에 주말휴식처나 혹은 주거지로 꾸미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특히 아름다운 몇 개의 역사는 불꽃튀는 경쟁을 통해 개인의 소유로 돌아갔다.
구입자는 주로 널따란 철도부지 위에 기관차를 세워 두고 오랜 전설이 담긴 정거장을 주택 삼아 평화롭게 만년을 보내려는 독일인들.
육순의 한 기차「팬」은 생일에 부인으로부터 한 대의 기관차를 선물 받고 조석으로 바라보는 기관차로부터 가끔 소년시대를 더듬고 있다고 옛 추억을 되새긴다.
「프랑크푸르트」대학의「귄터·람보」교수는「프랑크푸르트」근처의「하이젠베르크」정거장을 1천3백20만원에 구입했다. 그는 4명의 가족이 아름다운 계곡에 위치한 9천 평의 대지에 당나귀 한 마리·돼지 두 마라·오리 11마리·개 2마리·닭 24마리를 기르면서 지내는 생활은 낙원 같기만 하다고 즐거워한다.
그는 또「프랑크푸르트」까지의 왕복비용은 29마리의 닭이 낳은 계란 값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부수입까지 들먹이며 자랑한다.
그래서 총 4천3백 개의 역사 중 적자운영에 허덕이는 반수를 정리하려는 철도 당국의 계획 전망은 밝기만 하다. 더구나 폐기대상의 역사들은 거의 모두가 아름다운 깊은 숲에 둘러싸인 지 선의 소 역들이다.
이들 정거장이 하나씩 팔리게 됨에 따라 아름다운 서독의 옛 정거장들은 모두 시민들의 「주말 집」으로 자태가 달라질 운명에 놓여 있고 독일은「철도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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