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업무기밀 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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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위「김신조 사건」의 충격파로 강북지역, 특히 갈현·불광·도봉·수유동 일대의 부동산값이 한때 폭락한 적이 있으나,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일대의 땅값은 개발 「붐」에 들떠 상승일로에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지역에 많은 땅을 갖고 있던 모 모씨는 약간 밑지는 값으로 서둘러 이 일대 땅을 처분하고는 엉뚱하게도 신갈 쪽에 헐값으로 많은 땅을 샀었다.
상승세에 있는 땅을 손해까지 보면서 팔았을 뿐 아니라 경제성이라곤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벌판에 투자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었지만, 얼마 후 그곳엔 신갈「인터체인지」가 생겨 싸구려 땅이 금값으로 뛰었고 그들은 벼락부자가 됐었다. 또 모씨는 말죽거리 쪽에 땅을 사자마자 몇 배로 값이 뛰었는데, 이 무렵 「유력자」들이 이 지역의 땅을 대량 매입했던 것도 유명한 얘기다.
토지투기에 얽힌 이런 얘기들은 비일비재한데 이런 경우, 이 모 모씨들의 일확천금은 이 재수보다는 그들의 지위가 정보원과 직결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일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계획을 사전에 알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관련공무원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간에 저지른 비밀누설과 관련이 있는 치부행위라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공직자의 이 같은 업무상비밀누설은「급행료 수수」따위는 문제도 안 되는 양원 적인 부조리요, 선량한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해를 입히는 가장 지능적인 범죄행위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번에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이 작성한 서정쇄신 방안 중 공직자의 업무상 비밀누설엄단과 퇴직공무원의 유관업체 취업금지에 역점을 두기로 한 것은 뜻하는 것이 많다.
서정쇄신연감을 만들 정도로 공무원의 부정·비위를 뿌리 뽑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은 만족할 만 하다고 하긴 어렵다.
감사원이 96회 정기국회에 제출한「결산검사보고」에 따르면 75년 8월 1일부터 76년 7월 31일간에 적발된 위법 부당 사항은 9천5백26건으로, 전년도에 비한 건수증가는 7백88건에 머물렀으나 금액으로는 무려 3백28억5천6백 만원에 달해 약 1백60억 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위관련자 중징계·견책·고발된 인원수도 전년도의 9백36명보다 2배 이상인 2천3백46명에 달했다.
공무원 범죄의 유형과 수법은 천차만태이나 범죄기술은 이처럼 나날이 지능화·음성화하여 수사나 감사활동을 앞질러 가는 경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무원 범죄 중에서도 가장 지능적인 것이 바로 비밀누설과 업자와의 결탁이다. 모든 국가가 공무원 복무규율로 업무상 지득한 비밀을 지킬 의무, 직무를 기화로 한 부 당 이익을 멀리해야 할 의무, 그리고 사기업과의 겸직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하겠다.
업무상 비밀누설의 경우, 앞에서 말한 토지매매 뿐 아니라 도시계획·환율 및 금리인상·고시가격·공사입찰에 있어서의 예정가격 등 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국민이 입는 피해는 참으로 심대한 것이다. 이들은 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는 국민에 대한 신의를 판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이렇듯 업자와 관련을 맺었거나 결탁하여 공무보다 사기업체의 일을 더 알뜰히 보는 공무원은 흔히 퇴직하게 되면 과거에 편의를 봐준 업체나 유관업체에 임직원으로 가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제도적으로 금지시켜야 빙공영사하는 업자와의 결탁이라는 부정발생의 소지는 제거될 것이다. 「카터」행정부도 공무원이 퇴직 후 2년간 유관업체취임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한바 있으나, 우리는 이 기간을 더 연장하여 명색이 국 록을 먹는 공무원이 뒷구멍을 파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엄두도 못 내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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