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끝난 고교 평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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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등 5대도시에서 실시중인 현행 고교 무시험 입학제의 문젯점들이 정부당국자에 의해서도 재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처음부터 어부성세인 「고교 평준화」라는 명분아래 추진되었던 이른바 『추첨에 의한 고교 무 시험진학제』가 실시 3년만에 이제 어쩔 수없이 실패로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직 정부의 공식태도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긴 어려우나 누차 이 제도의 근본적인 혁파를 요구해온 본난으로서는 우선 문교당국자가 이 제도의 문젯점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키로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를 느낀다.
당면해서 재검토가 불가피한 문젯점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학생들의 학력저하 문제다. 교육의 제도 개선 노력이 지향하는 바가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있는 것이라면 제도자체가 학력 저하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때 이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75년에 실시된 전국고교생 학력검사에서도 평균 45.1점의 낙젯점을 면치 못한 고교생의 학력저하가 이미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바 있으나 이번에 대입 예시 결과로 그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님이 입증되었다.
이른바 「고교 평준화」시책이 실시된 후 처음인 이번 시험결과 「커트·라인」2점, 합격자 평균 점수 3.4점이 각각 떨어졌을 뿐 아니라 재수생 합격율이 전년 합격자의 32%로부터 38%로 증가함으로써 금년졸업자의 상대적 학력 열세를 실증했다.
둘째, 「평준화」라는 목표 자체가 갖는 비현실성문제다. 이번 대입예시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듯이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사이에 학력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진 것은 단치하고라도 학교간·지역간·개인간의 학력 평준화 기대가 모두 허사였음은 이제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애초에 학교의 시설, 교사의 질, 학생의 자질 등이 모두 차이가 있는 형편을 도외시하고 무턱대고 추첨으로 학생을 배분한다고 「평준화」가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었던가는 긴 실명이 필요치 않다.
그뿐인가. 학교내, 학급내에서 적지 않은 학습 지진아들이 일반적인 고교생의 학습진도를 크게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지적되어온 것은 어찌할 것인가.
세깨는 대담한 재정지원을 하기로 한다는 약속하에 단행된 이른바 평준화 시책이 당국의 식언으로 끝남으로써 사학은 통틀어 재정파탄의 위기에 서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학재단의 대다수가 거의 수익 재산을 갖지 못한 처지에 설상가상으로 사학의 자율성을 묶은 평준화 시책은 사학의 운영난을 가중시켰다. 전국 사학재단의 64%인 4백44개 법인이 법정 전입금 조차 부담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이런 사학이 교원 인건비의 절반과 시설비 전부를 국고에서 보조받는 공립학교와 똑같은 공납금으로 평준화 운영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것은 어블성설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지난해 재경파탄이 예견되던 사학은 2백개교에 이르렀으며, 약간의 사학지원이 정부예산에 반영되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근본적 개선의 여지는 아직도 요원한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이유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강조되어야할 것은 교육의 질과 학원의 자율성이 불가분리 관계에 있다는 대 원칙이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80연대의 의무교욱이 중학교교육에까지 미칠 것으로 전제할 때, 이 범위를 벗어나 있는 고교와 대학교육의 질은 전적으로 학리의 자율성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과 또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가 결코 금제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 다시 강조되어야 하겠다.
교육에 있어서의 「평준화」는 어디까지나 「기회의 평준화」라는 정신에 한정하여야 하며, 「평준화」의 이름으로 오히려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는 「능력의 억지 평등화」를 고집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경우의 고교입시개선 노력은 자유국가 교육운영의 본질적 원리원칙에 충실하도록 조속히 실현되어야 하겠으며 또다시 섣부른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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