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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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모의 화제는 7백80여만「달러」를 해외에 빼돌린 어느 악덕 상인에 온통 쏠려 있는 것 같다. 그의 행적은 어둠과 추위 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세정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청량한 시민들에겐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이다.
우리 주변에선 그처럼 허황되고 맹랑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일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선 몇 가지 웃지 못할 희극들을 보자. 화제의 주인공은 VIP(요인)와의 사교에 능란했다. 만인경시리에 그런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제스처」를 지어 보일 수 있는 것은 관가를 구보할 수 있는 「패스포트」가 되었을 것 같다.
그는 「팁」에 인색하지 않았다. 허장 성세의 효과를 노린 처세였으리라. 그의 승용차엔 무전 시설이 붙어 있었다. 필경 이것은 그의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심벌」처럼 돋보였을 것 같다. 그가 벌인 사업(?)의 밑천이 있다면 이런 허황하고 맹랑한 연출 효과였다. 과연 그의 사업은 일사천리로 번창했다.
그는 기어이 법망에 얽혀 들어서도 그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감히 나를!』이라고 일갈한 것이다. 이 한마디야말로 세상의 어떤 단면을 함축한 압권 같아 고소를 금할 수 없다. 「감히 나를!』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그림자를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도 정작 그 그림자의 정체가 안개 속에 가려 있는 듯한 인상은 더욱 호기심을 자아낸다. 「감히 나를」의 가면 뒤에는 무슨 받침대가 있었음직도 하다.
문제의 척결은 이런 데를 그대로 두고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 상인의 연출 효과가 된 인적 배경이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어떤 범행에 대한 문책은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있게 만든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도둑을 없애는 길은 도둑을 잡는 일 못지 않게 그 도둑을 만들어 내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도 있을 수 있다. 아니 후자의 문제야말로 바람직한 사회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이번 악덕 상인의 경우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감히 나를!』이라는 이 같은 어쩌면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합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오늘의 사회에 대해 연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사회의 일각에는 인간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성실과 근면을 미덕으로 삼으려는 밝고 믿음직스러운 면모도 있다.
그리고 다른 일각에선 이런 것을 악덕으로 이용하는 무리도 없지 않다.
오늘의 시대적인 요청은 그런 악덕의 무리를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성실한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좌절감을 주지 않는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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