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거의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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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월5일에 실시된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집권자민당은 지난55년 보수 합동이후 처음으로 중의원의 과반수 획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에 비해 공명·민사당과 자민당에서 이탈한 신 자유 구락부 그리고 사회당의 의석이 증가하고 다만 공산당이 반 이하로 줄었다. 전체적으로 자민당의 후퇴는 좌파가 아닌 개혁적 보수 세력 내지 중도의 성장으로 전이되었다. 그래서 자민당이 비록 약화되었지만 총 의석 5백11석 중 원래 공천자 및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입당한 8명을 포함한 자민당 2백57석, 신자유구 17석과 무소속 13석 중 약간 명을 합친 보수세력 전체의 의석은 별로 줄지 않았다.
무소속 당선자중 8명의 추가공천으로 자민당은 재집권에 필요한 과반수 2백56석 이상은 간신히 확보한 셈이다. 그래도 자민당의 의회기반은 안정 세력인 2백71석에는 상당히 미달하는 형편이다. 바람직하기로는 기대 이상으로 세력을 신장한 신자유구와 각 내, 또는 각 외 제휴로 보수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방법이겠으나 자민당의 체질에 반기를 들었던 신자유구와 어느 정도 밀착된 관계를 회복 할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이러한 보수합동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사회·공명·민사당 등이 제기하는 보·혁의 제휴 내지는 협조를 둘러싸고 일본 정계는 상당기간 유동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퇴조하여 중도·다당화의 경향을 두드러지게 한데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지적되고있다.
우선 기조적 요인으로 석유파동 이후의 일본경제 성장의 감속과 「록히드」추문이 지적된다. 일본경제의 눈부신 고도성장은 자민당 정권의 제1의 치적으로 간주되어 여타의 문제를 덮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석유 파동 이후 경제성장의 장기적 둔화는 매몰되었던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터진 것이 바로 「록히드」사건이다. 「록히드」사건은 정치의 도덕성의 문제와 사건 자체의 충격이란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록히드」사건으로 새삼 제기된 정치의 도덕성이란 요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기보다는 일본정치의 장기적 방향정립의 한 인자로서 의미가 있다. 이에 비해 사건자체에서 오는 충격은 성격상 단기적이긴 하나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어쨌든 「록히드」사건은 그로 인한 충격이려니와, 집권 자민당의 분화작용과 내분을 격시켜 자민당에 대한 일본국민의 신망을 더욱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구의 상대적 부상은 자민당에 대한 환멸의 반사적 효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본의 경치에서 자민당의 영광은 결국 끝장나고 마는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렇게 봐야할 이유도 적지 않으나,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겠다. 전에도 자민당은 몇 차례 후퇴했다가는 다시 회복하는 끈길 긴 복원력을 발휘했다. 다만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범 보수진영이 분화되어 있고 야당 내 중도혁신연합의 보조일치가 상당히 진척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자민당이 영광의 시대를 되살리는 길은 「미끼」파와 반「미끼」파로 첨예하게 대립된 당 내분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분화된 범 보수진영의 대동단결을 다시 이룩하는 길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체질 개혁과 어느 정도의 세대교체란 신자유구 측의 이탈명분을 흡수하는 성숙성이 발휘되어야 하겠다.
자민당 못지 않게, 제2당인 사회당도 공산당의 참패와 공명·민사당의 진출에서 스스로의 체질을 수건·중도화 하도록 촉구하는 유권자들의 경고를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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