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가들의 일화>
해강의 마지막 제자인 설해 민택기 (1907∼1941년)는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21세까지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고 글씨를 썼다. 눈오는 날 해강의 문하에 들어섰대서 해강이 「설해」란 아호를 지어주었다.
설해는 14세의 어린 나이로 너무 일찍 장가들어 여자를 몰랐다. 부인이 하두 돌아보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나가버렸다.
설해는 글씨도 잘 쓰고 사군자도 잘했다. 해강의 말년 작품은 대부분 그가 대작한 것이다. 전각도 성제 (김태석)에게 배워 일가를 이루었다. 청강이 중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올 때 가져온 제백석의 서화 전각이 실려 있는 화보를 보고 감탄, 제백석풍의 전각을 처음 시작했다. 제백석풍은 설해의 손을 거쳐 설송 최규상·철농 이기우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설해는 31세에 다시 결혼했지만 몸이 허약해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무허 정해창 (1905∼1964년)은 글씨를 잘 쓰고 전각에 이름이 높았다. 성재의 제자로 일제시대 화신 백화점에서 우리 나라 사람으로는 맨 먼저 전각 전시회를 열었다.
무허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 집에서 술 마시고 밤늦게까지 마작을 하고 돌아오다 안암교에서 떨어져 크게 병이 되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누워있으면서도 작품 활동을 했다. 그가 몸져 누워 있는 동안에 쓴 글씨에는 「어찌 삶을 연장하리」하는 뜻을 가진 『하연생』이란 낙관을 했다.
무허에게 전각을 가르쳐준 성제는 광복 후에 서울에다 「대동한묵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6·25사변 후에는 김시필씨가 경영하던 「금용 도서 주식회사」에서 그의 글씨를 받아 습자 책을 펴냈다.
청전의 제자인 설전 박원수는 37년 16회 「선전」에 『만추』를 출품, 초특선의 영광을 안았다.
설전은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소화공전 광산과를 나와 총독부 광산과 기사로 근무했다. 양창선 매몰 사건이 났을 때 바로 설전이 구봉 광업소 소장으로 있었다.
설전이 서울대 미대 교수 물망에 올랐을 때 청전이 『설전은 그림 재주는 좋은데 사상 관계는 모르겠어…』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스승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실망과 허탈감 때문에 공적인 미술 활동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설전은 그때부터 광산업에만 몰두, 지금 황보 광업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설전은 산수를 잘해 「선전」에 특·입선한 작품을 중국 남화전에 출품해서 입선되어 중국에까지 그의 작품이 입선되어 중국에까지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50년 동화 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만송 이기붕 (전 국회의장)이 작품을 사갔는데 그후에 곧 6·25가 터져 그림 값을 받지 못했다. 설전이 「선전」에 초특선하여 신문 기자들이 그의 누하동 집을 찾으려고 나섰을 때 청전 문하생으로 그와 「라이벌」이었던 제당 (배렴)이 설전의 집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 신문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근대 화가로 중국 문인화의 화법을 따른 사람은 영운 (김용진)이다.
영운은 제백석의 제자로 북경대학 교수를 역임한 방락이란 중국 사람에게 그림을 배웠다.
방락이 식산은행 두취 (은행장)로 있던 유하광풍이란 일본 사람 집에 오래 머무르면서 영운을 가르쳤다. 중국에서 제백석에게 직접 공부한 청강 김영기가 제백석 화법을 방락에게 배운 영운이 오창석 화법을 따른바 있다.
해강의 조카인 청해 김영수는 20세에 해강을 따라 일본까지 다녀왔다.
경북 군위군에서 신동이 났는데 그가 9세에 「금강」이란 두글자를 쓰고 죽었다.
그의 부모들이 이를 애통히 여겨 짝 채울 「산」자 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헤매다가 청해를 만나 그에게서 「산」자를 채웠다.
청해도 글씨 잘 쓰는 신동으로 통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속에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던 서화가들 중에도 유명한 사람이 많이 있다. 미술관이나 화랑에도 그들의 작품 (서·사군자·화조·산수)이 있어 참고 삼아 몇 사람의 이름을 열거한다.
수암 김유탁, 석연 양기훈, 설송 이규상, 효산 이광렬, 유당 김희순, 석재 서병오, 백당 현채, 추당 박호병, 백송 지창한, 난타 이기, 소봉 나수연, 혜석 조동윤, 석촌 윤용구, 청운 강진희, 소청 강신문, 해관 유영익, 우관 유한춘, 이당 이경승, 동주 심인섭, 약운 윤희채, 정재 최우석, 송재 조동욱, 긍산 조동호 등이다.
심재 이건직은 서예의 대가인 성당의 수제자로 소전 손재형과 쌍벽을 이루던 사람이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의 현관은 심재가 쓴 것이다. 청운과 소청은 부자 서호가이요. 해관과 우관은 형제 서화가다. <계속>계속>서화가들의>
(1782)<제자·김은호>|제52화 서화 백년 (88)|이당 김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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