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백년의 정치학적 조명-한국정치학회 「심포지엄」중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조선말기의 정치체제』·『1880년대 한국 국내정치와 외교정책』·『개항이후 조선왕조 정치체제능력의 성장』·『개화와 정치지배층의 성격』등 개항을 전후한 한반도 내외정세와 당시의 영향이 전통사회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차기해)가 8일 상오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이 「심포지엄」에는 19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70여명의 정치학자가 토론에 참가했다. 삼성문화재단의 재정보조로 이뤄진 이번 「심포지엄」의 가장 큰 특징은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취급하면서도 종래의 역사학적 접근방법을 완전 탈피, 행동과학적 방법을 비롯한 최신의 국제정치 이론을 도입, 개항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창윤 교수(육사)는 『동「아시아」체제의 구조·기능적 변천-한반도의 안정도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역사적(970년부터 현재까지)으로 이 지역의 안정에 영향을 미친 「전쟁」, 「다극화와 양극화의 여부」, 「내란에 따른 안정도」, 「전쟁의 피해」, 「이 지역의 긴장도」, 「침략」의 정도를 수량화, 상호관계를 밝혀냈다.
그 결과 최 교수는 동「아시아」체제에서 강대국이 많은 다극화 체체로 나아갈수록 한반도의 정치·지리적 통일성이 감소되는 사실을 추출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다극화체제의 시기에는 주체성, 혹은 한반도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진다는 사실도 똑같이 중시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역사상 송·원·명·청과 같은 유일극 체제 아래 한반도가 영향을 받을 경우, 통일성은 유지되는 대신 독립과 주체성을 잃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결론으로 최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체제가 미·일·소·중공의 다극화체제이기 때문에 다극화체재의 한반도 속성인 주체성 확립과 독립성을 발전시키며 이에 맞는 통일정책을 추구해야한다고 제시했다.
한편 오기평 교수(서강대)는 개화기 한국을 둘러싼 「중립화」안을 분석함으로써 현재도 국외학자들간에 한반도 평화의 한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중립화 문제의 한계를 규정했다.
오 교수는 우리 나라에 대한 근대적 의미의 중립화 문제는 ①개항 이후 일본의 지배권이 확립될 때까지 열강의 각축에 따른 공동보호의 명분 ②해방 이후 60년대 말까지 냉전의 해결방안 ③70년 이후 강대국의 「데탕트」분위기에 따라 성격을 달리해가며 논의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항 이후 열강이 각축하던 시기의 중립화 안은 열강중 1국의 지배권 확립을 위한 도구로 이용됐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냉전시기의 중립화 논의도 남북정권의 정통성 문제·북괴의 중립화를 이용한 한반도 적화통일 야욕을 인식하지 못했던 단견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중립화」론의 설득력 부족 때문에 오 교수는 「중립화」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대안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근의 중립화 논의는 이를 현실화시켜 중립화 조건의 변화 요인을 정확히 검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중립화 통일론은 민족주의의 과제로 「정치적인 상징」이라는 점과 정책 과학적인 면에서 「한반도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명분」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노재봉 교수(서울대)는 『계몽주의비판』을 통해 일제하 일부 지식인사회를 풍미했던 문화주의·「코즈머폴리터니즘」·교양주의·내면적 자유사상 등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 대중의 국민화·주체화에 역작용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1920년대 이른바 일제의 문화통치는 신문화운동과 함께 이광수를 정점으로 계몽주의를 국내에 퍼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정치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하고 이광수의 경우처럼 전통의 전면적인 부정과 함께 우리 나라가 문화면의 열등생이라는 점에만 집착, 민족주의라는 허울 속에 문화적 제국주의로 흐르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계몽적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기독교가 제국주의의 문화적인 수단이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계몽주의와 결합된 기독교가 정신사적인 면에서 「문화적 미개」를 「죄」로 전환시키면서 민족주의의 내면적 후퇴를 부채질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실은 「칼빈」주의적 주장이 식민지 자본주의의 자극제로 되고 「루터」주의적인 면을 동양적 체념태도와 결부시키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이 같은 계몽주의의 폐가 극복되지 못한 채 정치작용을 선·악의 기준에서만 파악하고 민주·전제의 문제는 관념적으로 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계몽주의의 전통은 현대 민족주의의 과제인 대중의 주체·국민화에 방해가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임연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