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재단, 중간 간부가 이사장 위임장 위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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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 투자를 추진한 철도청(현 철도공사) 산하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이하 철도재단)이 지난해 9월 합작회사의 민간인 주주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철도청과 철도재단 간부들이 재단 이사장의 위임장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7일 감사원과 철도공사 등에 따르면 철도재단은 지난해 9월 16일에 유전 인수를 위해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 등 민간인 사업자들과 공동 설립한 한국크루드오일(KCO.자본금 10억원)의 민간인 지분 60%를 인수했다. 이 중 42%는 전씨의 지분이었고, 나머지 18%는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 소유였다. 이에 따라 철도재단의 지분은 기존의 35%에서 95%로 늘었다.

재단이 이들의 지분을 모두 인수한 것은 사업자금 대출 창구였던 우리은행 측이 전씨 등 두 사람의 신용을 믿지 못하겠다며 대출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재단 측은 당시 지분 인수 조건으로 "유전사업이 성공할 경우 두 사람이 넘겨준 지분의 대가로 액면가(6억원)의 20배인 120억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당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분 인수계약서에는 재단 측의 박모 본부장이 서명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전씨는 "박 본부장의 서명만으로는 안되고 재단 이사장의 위임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그는 즉석에서 재단 이사장의 위임장을 써주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당시 재단 이사장이었던 신광순(현 철도공사 사장)철도청 차장이 위임장 작성 사실은 물론이고 지분 인수와 관련된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세호 당시 철도청장도 지분 인수 10여일 전인 9월 3일 건교부 차관으로 이미 자리를 옮긴 뒤였다. 철도청의 최고 결재권자들이 모두 지분인수 계약 및 위임장 위조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위임장을 위조한 박 본부장은 이에 대해 "철도청의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전씨와 계약하기로 했으니 (요구사항을) 들어주라'는 지시를 내려서 이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신 사장은 곧 왕 본부장과 박 본부장을 위임장 위조 혐의로 형사 고발할 예정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120억원이라는 거액을 지불해야 하는 지분인수 계약을 하면서 재단 이사장에게 보고도 안하고, 위임장까지 위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현재 러시아에서 계약금 반환 협상을 하고 있는 왕 본부장이 귀국하는 즉시 자세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기찬.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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