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번뇌 같다" 108㎜ 골프 홀 넓히면 안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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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름 38㎝(규정의 약 4배) 홀을 쓴 골프 대회 장면.

골프 홀의 지름은 4.25인치다. 스코틀랜드의 머셀버러라는 골프장에서 홀을 뚫던 파이프의 지름이 이 크기여서 그렇게 굳어졌다. 미터법으로 고치면 108㎜다. 동양 골퍼들은 “홀 크기가 하필 108㎜여서 108 번뇌를 일으킨다”고 푸념한다.

 골프를 어려워하는 아마추어들을 위해 홀의 크기를 키우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프로골프협회(PGA·일반 프로골퍼들의 모임으로, 투어 프로들의 모임인 ‘PGA 투어’와는 다르다) 회장인 테드 비숍의 주장이 20일자(한국시간) 뉴욕타임스에 소개됐다. “골프가 너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려 골프 인구가 줄고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골프를 만들어 흥미를 높여줄 필요가 있다.”

 골프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PGA의 아이디어 중 하나가 피자 크기를 선택하듯, 실력에 따라 홀 크기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PGA는 초보자나 어린이를 위한 홀은 지름 15인치(약 38cm)로 정했고, 프로골퍼 세르히오 가르시아 등이 참가한 시범 경기도 했다. 15인치는 일반 홀보다 4배 정도 크며 농구골대 지름(45cm)에 가깝다. 가르시아는 “큰 홀은 주니어 골퍼와 초보자, 또 시니어 골퍼들이 더 빨리 경기하면서도 스코어를 더 잘 내 골프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 인구 감소에 위기를 느끼는 건 골프용품사도 마찬가지다. 테일러메이드는 HackGolf.org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골프를 쉽고 재미있게 하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으며 2년 전 일반인 대상 15인치 홀 대회도 열었다. 당시 참가자 60명 중 3퍼트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참가자들은 “프로처럼 칩샷을 홀인시키거나 버디나 이글을 잡는 재미가 생겼다”고 했다. 참가자들의 스코어는 8~10개 정도씩 줄었고, 깃대를 뽑을 필요도 없어 라운드도 3시간15분 만에 끝났다.

 홀 크기를 늘리자는 주장은 이전에도 종종 나왔다. 20세기 초반의 프로골퍼 진 사라센은 “홀 직경을 8인치로 늘리자”고 했다. 퍼트 무용론까지도 나왔다. 20세기 중반 벤 호건 등 샷에 비해 퍼트 실력이 별로였던 선수들은 “홀을 아예 없애 그린을 양궁 과녁처럼 만들고 얼마나 가까이 붙였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기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퍼트가 핵심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는 “골프는 어려운 게 매력이며 이를 바꿀 모든 행동에 반대한다”고 했다.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 R&A(왕립골프협회)와 USGA(미국골프협회)는 모든 골퍼가 한 가지 룰에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방침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USGA 회장인 토머스 J 오툴 주니어는 “우리가 알기에 그건(홀 크기를 바꾸는 건) 골프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사람들을 골프에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PGA는 모든 홀에서 멀리건을 하나씩 쓸 수 있게 하는 것, 페어웨이나 러프에서도 티를 꽂고 샷을 하는 것, 벙커에서는 손으로 공을 던져도 되는 것 등의 아이디어도 냈다. 골프 장비도 아마추어에게는 프로와 다른 규칙이 적용되게 하고 한 라운드를 6홀이나 9홀로 줄이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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