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 칼럼] 세월호 침몰 … 정치권이 할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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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30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쑥 들어간 곳이 있다. 정치권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역풍을 맞을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다가 6·4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골프나 술자리 자제는 물론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 올리기도 금기 대상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17일 트위터에 자작시 2편을 올렸다가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당했다. “어린 자식/바다에/뱃속에/갇혀 있는데/부모님들/울부짖는 밤…괴로운 밤”이라고 읊었다가 “이 와중에 김삿갓 타령이냐”는 비난이 거세자 서둘러 삭제했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우리는 당신들을 잃을 수가 없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도 “염장 지르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윤석 수석대변인도 경비정을 타고 사고현장을 찾았다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정치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슬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애도를 핑계로 무개념 선거운동을 벌이니 더더욱 공분을 사는 것이다.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의 아픔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군수 예비 후보 ○○○ 드림”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부터 ○○시장 여론조사가 실시됩니다”…. 이러니 정치인들이 여야 불문하고 싸잡아 욕을 먹는 것이다.

지금 정치인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구조활동과 유가족 대책은 관계당국에 맡기고 민생에 힘을 쏟는 것이다. 특히 애도정국으로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다시는 이런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승객보다 먼저 탈출하는 선원의 형량을 높이는 법안 제출 같은 뻔한 대응을 넘어 전국의 노후 여객선 현황과 구명물품·승무원 교육 수준을 낱낱이 파헤쳐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 선박뿐인가. 기차 등 다른 교통수단이나 학교·어린이집 등 공공장소라면 대소경중을 불문하고 안전실태를 따지고, 방재당국의 구조능력도 재점검해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 지방선거 유세가 중단돼 할 일이 줄어든 지금이 적기 아닌가.

세월호 인양 작업이 본격화되면 관련 상임위에서 대규모 인명손실에 대한 추궁이 이어질 것이다. 침몰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993년 292명의 희생자를 내고 침몰한 서해 훼리호 사건의 수사검사였던 김희수 변호사는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어떻게 21년 전과 변한 게 하나도 없느냐”고 탄식했다. 구조용품 안전점검이 없었고, 검사를 안 했으면서도 검사한 것으로 꾸미고, 비상식량과 의약품을 실은 구명정이 안 터졌던 그때의 비극이 지금과 별 차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 국회가 다섯 번 바뀌었다. 1500명 가까운 의원들이 “나는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이 바꾼 건 없었다. 규정을 무시하는 선사,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 관청, 재난대처의 미숙함, 이 모두가 놀랍게도 21년 전 그대로다.

그동안 의원들이 정쟁 대신 정책, 말 대신 행동, 사후추궁 대신 사전점검을 우선하며 정치를 해왔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정부가 아니라 국민 편에 서서 대책마련을 해야 한다”(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국민 안전을 위해 정치권은 무엇을 했나 깊이 생각하면서 반성한다”(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 같은 여야 수뇌부의 말이 공염불로 들리는 이유다.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져간 꽃봉오리들의 비극 앞에 어른들, 특히 정치인들은 전원이 죄인이다. 그 무거운 죄과를 씻는 길은 낯간지러운 현장 방문이나 애도사 리트윗이 아니다. 21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우리의 저질 안전 인프라를 근본부터 개선해가는, 조용하되 꾸준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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