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어디까지 왔나-제1회 『작가와의 대화』서 김동리씨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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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소설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공리성만을 추구하여 뚜렷한 성격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책임은 평론가에 있다.』 15일 저녁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체1회 『작가와의 대화』(「한국문학」 주최)에서 중진작가 김동리씨는 『한국소설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강연에서 한국소설의 문제를 이와 같이 지적하여 주목을 끌었다. 이와 같은 김씨의 지적은 현실참여주의문학에 대한 강력한 반론으로서 문단에 파문을 던질 것으로 보여진다. 이날 행사는 김씨의 강연에 이어 최인훈씨의 『광장』, 이청준씨의 『당신들의 천국』, 그리고 황석영씨의 『객지』에 관한 작가와 독자들의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있었다. 다음은 김씨의 주제강연요지.
『한국소설이 어디까지 왔나』를 이야기하자면 우선 한국소설의 성격부터 규정해야하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소설의 성격은 아직 뚜렷하게 형성돼 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 소설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증거다.
우리나라에는 작가도 많고 따라서 소설의 경향도 여러가지지만 대체로 우리나라 소설은 현실주의 소설이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이란 것이 원칙적으로 사실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 해도 우리소설이 세계문학의 한 단위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실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상과 철학이 담겨지지 않으면 안된다. 가령 정치나 사회의 개조를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은 그것이 아무리 실감있다 하더라도 개성 있는 소설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소설은 왜 그처럼 사실주의에만 집착하는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개화기에 「유럽」사회서 이루어진, 개인주의사회서 발달된 소설양식을 직수입해왔기 때문이며 일제하에서의 표현의 부자유, 경제적 압박 때문에 소설의 방향이라든가 위치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평론가들의 오도도 중요한 책임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론가들은 작품에 대한 공식적이고 안이한 평가만으로 한국소설로 하여금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더 많게 했다. 평론가들이 현실적인 차원에서 깊은 의미를 갖지 못한 작품들을 바람직한 방향의 소설로 간주함으로써 소설의 기본여건을 갖추지 못한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 결과 『한국소설은 한국인이 한국에 관해서 한국말로 쓴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소설은 이야기와는 다르다. 사회현상을 그대로 옮겼다면 그것은 정치 혹은 사회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족시킬는지는 모르지만 소설의 기능을 다한 것은 아니다. 소설이 이처럼 사회성위주의 현실주의·현실적 공리주의만 추구하다 보면 한국문학 자체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나라 근대소설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1917)은 민족주의·인도주의와 결부된 이상주의를 표방했다.
이와 같은 경향이 사회주의를 거쳐 정치현실과 결부된 민주주의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오늘에 이르러 우리소설의 흐름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어느 민족보다 문학적 소질이 많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조만간 우리 문학은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진출할 것으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더욱 깊은 면을 파악하고 작가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를 강화시켜야한다. 그 첩경은 무엇보다 우리소설이 사회적 공리성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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