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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총통은화」와「국왕동전」|【마드리드=박중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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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호텔」의「바텐더」는「프랑크」의 얼굴이 새겨진 그럴 듯 하게 생긴 50「페세타」짜리 은화와「카를로스」왕이 새겨진 보잘것없는 1「페세타」짜리를 내놓고는 이건「카우디요」(총통)고 이건「환」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까 액수가 큰 은전에는 모두「프랑크」의 얼굴이고 왕의 얼굴이 박힌 것은 겨우 콩알만한 1전 짜리 구리동전밖엔 없다.
그건 아마「환·카를로스」가 왕이 된지 얼마 안 된다는 우연한 것 외엔 별다른 뜻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지금「스페인」사람들이 두 사람을 놓고 보는 눈의 차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도 어림없진 않다.
「바텐더」의 표현처럼「프랑코」는 아직도 큼직한 은의「카우디요」고 왕은 아직도 조그만 구리조각의「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문제라면 문제다.
40년의 긴「프랑코」의 시대가 막을 내려가고 있다는 엄청난 변화가 피워주고 있는 만발하는 화제 속에서 제일 큰 것의 하나를 든다면 그건 이 39세 짜리 젊은 왕이 과연 어느 정도의 배짱과 두뇌를 가진 위인이냐라는 거다.
도대체 반세기 동안이나 없던 왕이 새로 생겼다든지, 그것도 자기 아버지와 말하자면 자리다툼을 하다「프랑코」에「뽑혀」왕관을 쓰게 됐다는 따위만으로도 화젯거리가 될만한 까닭은 있다.
그러나 더 큰 까닭은 지금 아주 중요한 고비를 넘기고 있는 이 나라의 운명이 다분히는 그의 배짱과 머리의 크기에 좌우될 처지에 있다는 명랑한 사실에 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고분고분 모시기로 한데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정치적인 공백 사태가 혼란으로 채워지는걸 막기 위해선 하나의 구심점이 필요하고 그런 노릇을 하기에는 왕이 적격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새로 정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것만도 2백개에 아직도 합법화까지는 안 갔어도 실제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큼직한 노조만도 다섯 손가락으로 세려면 모자란다.
그리고「프랑코」시대의 유일한「정당」이었던「국민운동」, 반비밀「엘리트」조직인「오푸스·데이」등등 정말 백화제방이 아니라 만화제방인게 오늘의「스페인」이다. 그리고 어쩌면 정치의 최종 조정자일지도 모를 군부.
이들이 모두「돈·키호테」와「돈· 환」을 낳은「스페인」의 아들이고 보면 여간한 배짱을 갖지 않고서야 조그만 합의하나인들 만들기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건 뻔한 일이다.
벌써 지금의 개혁안(금년 안에 기본법에 관한 국민투표, 내년 6월까지 총선거를 통한 민주적인 상·하원 구성)만 해도 좌에서는 그것의 소위 반 민주성을 요란하게 지적해 왔고 우파에서는 그「급진성」에 경계 어린 눈초리를 보내왔다.
어느 우파 거물 장성 한 사람은『개혁을 하자는 놈들은 모두 흡혈귀다』는 유언을 남겨놓고 죽었다.
문제는 왕에게 달렸다. 지금 그의 친구인「수아레스」수상 (45세)과 젊은 각료들(외상 41세, 법무상 42세 등)을 중심으로 파란 많은「스페인」역사의 한 장을 쓰고 있는「가를로스」왕에 대한 일반의 평점은 중이상의 정도다.
그는「수아레스」의 전임자인「나바론」, 부수상「산디아고」중장 등 보수강경파의 모가지를 자른다든지 지금 적지 않은 화젯거리가 되고있는 공산당의 합법화를 거부한다든지 함으로써 일반으로부터 『배짱이 아주 없는건 아니구나』라는 소리를 듣고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개혁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돼 가야 하는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데 지금까지 보인 솜씨는『대단하다』고 말할만한 것도 못됐다는게 중평이다.
아직도「바텐더」씨가 1전 짜리 동전을 놓고 이게「환」이다 하는 판이라면 사태는 낙관을 할건 아니다. 혼란 속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는건 옳다. 그리고 구심점이 허약해서야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지금도 매일 밤「마드리드」의「텔레비전」은 펄럭거리는「스페인」 국기를 배경으로『왕 만세 「스페인」의 전진만세』라는 자막으로 막을 내린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디로의 전진이냐에 대한 설명은 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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