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음해를 없애는 대책(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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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영복=역사나 생활습성을 보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모함이나 음해를 하는 소질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러한 바탕을 가정생활과 이웃간의 생활에서 우선 정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욕하거나 모함하는 것을 부모가 나무라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굴한 것으로 싫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으면 이런 습성이 무척 견제되리라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생활의 현실은 모함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실정이예요. 이런 것을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훈련을 통해 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병헌=잘 살지 못하고 가난하니까 서로 앞다투어 특혜를 보려다 남을 모함하게 되는 측면도 없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경제가 발전되어 나라살림이 윤택해지고 경제생활이 나아지면 그런 측면은 좀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이규동=경제적으로 보면 「핸디캡」을 주는데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어느 쪽에는 「핸디캡」을 주고 다른 쪽엔 주지 않고 차등경쟁을 시키니 자연히 모함이 조장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또 하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의 「물」에 대한 합리적인 태도가 부족한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공 어느 대기업이 무슨 특징부문에 투자를 안 한다고 비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로서는 그런 비판은 잘못된 발상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경제의 「룰」만 지킨다면 기업이 꼭 특정부문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경제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정부문에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정책이 어떤 유인을 주는 등의 노력을 통해 해야할 일이지, 기업이 책임을 지고 비방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음해풍조를 없애려면 정책결정 과정이 좀더 공개적이어야 될 듯 합니다. 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모함이나 무고 등의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윤태림=옳은 얘기입니다. 실제로 조그마한 학교사회에서도 어떤 결정을 할 때 몇 사람만 모여 하고 나면 무척 말이 많아요. 그러나 여러 사람을 참여시키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설명을 하면 별로 말이 없더군요.
▲고=각가지 욕구불만이 남을 헐뜯게 되는 심리적인 바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상에 대해 불만이 많고 생활도 어렵고 일도 잘 안되고 하는데서 생긴 울적한 기본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 각처에 욕구불만이 상당히 축적되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겠죠.
▲윤=욕구불만이라는 거야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 갖고 있읍니다. 음해의 심리적 바탕은 욕구불만이라기 보다 일종의 「새디즘」(가학성향)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새디즘」도 만인이면 만인이 모두 갖고 있지만, 요는 그것을 다른 데로 승화시켜 나가느냐, 가학행위로 나타내느냐가 문제겠지요.
▲고=그러기 위해선 사회가 공동의 바탕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함·모해는 이기주의 같은 어떤 좁은 단위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데서 연유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회에는 그러한 좁은 단위를 모두 모함하는 전체적인 것이 있는 만큼 전체적인 시야에서 같이 느끼고 같이 사고하고 같이 호흡한다 할까 하는 사회기풍이 진작되어야 하겠읍니다.
▲장룡=그렇습니다. 연대의식을 고취하여 그런 병폐를 불식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사회교육의 역할이 중요하겠지요.
▲고=또 경쟁의 대상을 다양하게 분산할 필요도 있다고 봐요. 전반적으로 사회에 기회가 축소되면 자연히 그것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다양한 기회를 향한 자기 나름의 노력이 응분의 댓가를 받을 수 있게 되면 모함하는 풍조도 자연히 줄어들 겁니다. 경쟁의 대상을 다양하게 분화시키기 위해선 과도한 통제는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그런데 그 과도한 경쟁의식이라는 게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의 기본적 변화가 없는 한 순화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미국인들을 보면 평직원으로 일생을 보내도 운명 비슷이 생각하고 아둥바둥하지 않습니다. 은행원을 봐도 평행원으로 정년을 맞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러면서도 크게 불만이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선 무슨 대학 나왔으니 장관쯤은 꼭 해야겠다는 기분을 좀처럼 체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오=체념이라기 보다는 구미사회에선 사회가 안정돼 사회적 「모빌리티」가 안정되어 있으니 그런 허튼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 아니겠읍니까.
▲장=여가를 잘 선용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구미에서는 집에서 혈기를 만든다든가 도자기 취미를 갖는다든가 여가의 생산적 선용에 사회적 관심이 큽니다.
여가는 많은데 별로 할 일이 없다보면 남의 일에나 관심을 쏟게 되기가 십상입니다.
그런데서 음해가 조장되는 면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윤=무엇보다도 모함이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일반화되면 모함도 자연히 없어지지 않겠어요. 그런 견지에서 정부가 무기명투서를 일체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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