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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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엔 며칠째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원주지방의 비는 하룻새에 3백mm를 넘었다고 한다. 한 척 깊이의 물이 하늘에서 삽시간에 쏟아진 셈이다.
우리 나라의 강수는 기록을 보면 좀 유별나다. 연 강수량의 반 이상이 한여름에 내린다. 해안 지방은 50% 정도, 내륙 지방은 60% 정도, 특히 섬진강 상류는 연 우량의 65%가 여름에 쏟아진다. 그것도 8월에 집중되어 있다.
여름이면 우리 나라는 갖가지 기상의 교차로가 된다. 여름 계절풍, 양자강 유역에서 발생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이동하는 온대성 저기압, 그리고 폭풍우에 떠밀린 열대성 저기압 등이 모두 이 무렵 우리 나라를 지나간다.
우리 나라 강우의 또 다른 특색은 호우성이다. 열대의 「스콜」과 같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장마철이면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비는 많은 기록을 남겨주고 있다.
여름의 일 강수량은 많아야 2백mm 정도이다. 그러나 하루 3백mm의 비가 내렸다면 이것은 엄청난 기록이다. 연 평균 강우의 3분의 1이 하룻 사이에 내린 셈이니, 얼마나 호우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시간동안 최다 강수량의 기록은 제주의 1백5mm가 있었다. 1927년9월11일의 일이다. 남해안 이남이나 동해 남부 해안 지방은 7월 또는 9월에 이런 일이 잦다. 서울의 119mm, 부산의 71mm, 용암포의 70mm, 원산의 68mm, 문경의 62mm, 평양의 55mm 등은 모두 유명 기록들이다.
1925년 서울엔 우리 나라 기후 사상 보기 드문 호우가 있었다. 7월11일부터 나흘동안 무려 1,068mm의 비가 내렸다. 한해에 내려야 할 비의 60%가 한번에 퍼부은 것이다.
10여년 전인 1964년8월8일엔 충북 제천에도 집중호우가 있었다. 하오 5시부터 2시간 동안 212·4mm의 비가 쏟아졌다. 청주·충주에까지 홍수가 미쳤었다.
이런 현상은 습기를 잔뜩 품은 기단이 내려왔을 때 일어난다. 이때의 저기압 또는 강우 전선이 상부의 「제트」류와 연결되고, 한편 지형도 바람목인 하곡 같은 곳일 때 집중호우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때로는 가뭄을 만나 숨이 차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 기후는 다분히 「히스테리컬」한 것 같다.
기상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략 8년 주기로 그런 가뭄이 든다. 그것은 옛 기록에 8년마다 흉년이 한번씩 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여름의 호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재해를 안겨준다. 우리의 이웃엔 언제나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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