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벽사의 표정 귀면와|조자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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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쓸모 없는 물건을 가리켜『헌 기와조각』같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보이는 신라시대의 도깨비기와는 한국미술 5천년전의 국가「팀」의 한「멤버」로서 당당히 그 이름을 날리고 돌아왔다니 기왓장팔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므로 이 기회에 그 내력을 한번 대략이라도 살펴볼까 한다.
첫째로 이것은 신라시대의 기와이니 만큼 우리 나라 건축사자료로서 귀한 물건이다. 수면문망와라고도 불리는 이 기와 양식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건축에 흔히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 와서 사라져 버린 것인데 중국지방에서 그런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것은 한남특유의 건축양식이라고 학계의 인정을 받고있다.
둘째로 이 기와는 신라조각의 섬세함을 입증해 주는 좋은 고대작품으로서 한국조각사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특히 신라시대에는 석량지라는 유명한 조각가의 이름까지 기록되어있고 그의 작품이 많이 깔려 있다는 사천왕사지에서이 기와가 출토되어 이것이 바로 양지의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설도 유력하다.
셋째로 망와는 망을 보는 기와라 지붕 끝에서 집안에 들어오는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하여 그 존재가 중요했었다.
다시 말해서 이 기와는 민간신앙의 설사은상이 깊이 담긴 미술품으로 민간종교사 또는 민간미술사자료로서 더욱 그 가치가 중요시된다. 우리 미술사를 외래종교의 영향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무교 신앙을 주축으로 꾸며나가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인 것이다.
넷째로는 한국 문양사 자료로서의 역할을 들어야겠다. 문양 사에 있어서 벽사문양은 어느 문화에 있어서나 다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동양 벽사문양에 있어서 귀면 이라고 불리는 괴수면 은 신수(사신등) 영수(사령등) 외수(천구등) 벽사수면을 말하는 것인데 그 정체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영원한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이 큰 수수께끼에 대한 한국 측 자료가 바로 이 귀면와의 문양인 것이다.
다섯째로 귀면와는 우리 나라 민속학연구자료로서의 의의가 크다. 가장 한국적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도깨비 설화가 지니는 멋과 귀면와가 조형미술로서 나타내는 멋과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한국민속이 빚어낸 두 가지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라면 호랑이와 도깨비를 들겠는데 이 두 가지가 각각 회화와 조각으로서 조형화 되어있는 것이다.
여섯째로 이 기와조각은 우리 나라 신화의 조형적 자료로서 산신정화와 아울러 매우 중요시된다. 환웅천황이 하늘에서 삼천의 도깨비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으로 내려오시는 장면이이 도깨비 기왓조각 을 통하여 매우「드러매틱」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게되며 중국의 황제와 싸우던 치우 장수의 맥이 이 작은 기왓조각에 의하여 이어지는 것 같다.
일곱째로 이 귀면와는 한 제의 미학에 있어서의 「부드러움」을 대표해서 말해주는 역사적 작품이라고 믿어진다. 무섭고 사나와야 할 호랑이·사자·해태·용·도깨비 같은 것이 우리예술의 울타리 속에 들어오면 모두가 동방의 군자다운 모습으로 부드러워지게 마련인데 이것을 껄껄 웃으면서 말해 주는 게 바로 귀면와다.<에밀레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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