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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한국판 '스위스 모빌리티'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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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국빈 방문을 계기로 스위스와 관광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국제 경쟁력 1위 국가인 스위스의 관광정책을 잘 벤치마킹해 선진 관광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지난 2월 3일 ‘제2차 관광진흥확대회의’ 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네 번 스위스를 언급했다. 대통령이 묘사한 스위스는 우리나라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선진국의 모습이었다. 그 뒤로 스위스는 관광 한국이 베껴 써야 할 모범 답안의 이름이 됐다.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정부는 국내 관광 활성화 및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61개 추진과제를 확정했다. 그 61개 추진과제 중 낯선 이름이 보였다. 코리아 모빌리티(Korea Mobility). ‘차 없는 여행정보 종합 네트워크’라는 부연 설명을 듣고서야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코리아 모빌리티는 스위스 모빌리티(Swiss Mobility)의 한국판이었다.

 스위스 모빌리티는 쉽게 말해 스위스식 생태관광의 한 방법이다. 기차·자동차 등 동력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여행하는 여행상품이 스위스 모빌리티다. 걷기·자전거하이킹·인라인스케이트·MTB(산악자전거)·카누, 이렇게 5가지 방법으로만 여행할 수 있도록 관광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 2011년 한 해에만 스위스는 이 시스템으로 약 6000억원(547만 스위스프랑)의 수익을 올렸다.

 스위스 모빌리티는 치밀하고 정교한 관광 시스템이다. 모든 관광 인프라가 착착 맞아떨어져야 한다. 트레일을 걷다가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에서 내려 카누를 타고 여행하는 게 스위스 모빌리티다. 현장에서 제공되는 정보가 정확해야 하고, 현장에서 장비와 운송 수단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지난해 현재 595개나 된다는 전국의 트레일은 조성 주체가 제각각이어서 운영 주체도 제각각이다. 하여 통일된 이정표는커녕 정확한 코스 상태도 확인이 안 되는 형편이다. 4대 강 사업으로 조성된 자전거 길도 지자체가 예산을 들먹이며 관리와 운영에 손을 놔 엉망이 된 구간이 허다하다.

 스위스는 관광산업 경쟁력 세계 1위 국가다(2013년 세계경제포럼). 남한 면적의 50%가 안 되는 작은 나라지만 6만㎞가 넘는 트레일이 있다. 6만㎞가 넘는 트레일의 이정표는 전국 공통이다. 한 자리 수 루트는 전국 루트이고 두 자리 수 루트는 지역 내 루트이며, 이정표에는 목적지까지 거리와 시간이 표시돼 있다. 그런 스위스도 2008년이 돼서야 스위스 모빌리티를 정부 공식 프로젝트로 출범했다. 1993년 자전거 여행자들이 전국적인 사이클 투어 루트를 만들자며 단체를 만든 게 발단이 됐으니 꼬박 15년이 걸린 것이다.

 코리아 모빌리티는 엄청난 예산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국가 과제다. 정부가 진정 스위스의 모범 답안을 베끼고 싶다면 스위스의 성공 이면에 감춰진 15년 세월에 주목하길 바란다. 수많은 토론과 논쟁, 수많은 화해와 양보 끝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관광 시스템을 갖췄다. 당장 어지간한 정부 부처라면 죄 거느리고 있는 트레일부터 정리했으면 좋겠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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