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금고나 의료조합의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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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대통령이 거듭해서 깊은 관심을 표명한 의료 혜택을 전 국민에게 넓히는 일은 누구나가 느끼고 있는 매우 시급한 과제다. 따라서 이들 한꺼번에 모두 해결하기 어렵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이루어 나간다면 반드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선은 정부가 내년부터 실시한다는 의료보험 제도만으로도 하나의 큰 진전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의료비용과 관련한 상대적 저소득층이 매우 두터운 현시점에서는 의료보험의 혜택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도의 보완제도가 불가결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전국민의 80%를 의료 저소득층으로 추산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일의 중요한 순서로 따지면 본격적인 의료보험제도의 확립이 더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과제임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요청은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을 사회화하는 제도의 마련이 더 시급하다. 때문에 초기단계의 의료보험제 확립과 동시에 다양한 보완제도를 합께 구상해야 하는 어려움이 남는다.
의료와 같은 사회보험의 체계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일견 비능률적일 수도 있으나 우리의 처지로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실제로 복지 선진국들도 전통적인 의료보험제도의 맹점이 노출되면서 제각기 특색 있고 지역실정에 맞는 보완제도를 개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선진국들의 이런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 셈이다. 4차 계획의 사회보장 체계나 당면한 의료확대 시책에서도 이런 이점을 살릴 수 있게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저소득층 의료 확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의료 전달체제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현재의 전달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오래된 공통 의견이었다.
국공립병원과 보건소를 주축으로 한 현행제도는 주로 예산상의 이유 때문에 서로 잘 연관되지 않고, 감독기능도 흩어져 있어 운영상의 모순과 헛점이 여간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공공 의료기관을 정비·확충하거나, 보건소의 기능을 크게 늘려 감독기능을 일원화하자는 주장에는 거의 모든 관계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꼭 필요하다면 보건청을 신설해서라도 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하여 의료「서비스」확대의 기반을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라 생각된다.
지역사회의 의료요구 중 65%가 본격 의료 아닌 경미한「서비스」로 치유될 수 있었다는 통계로 미루어 보건소의 기능확대는 매우 유용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 경우 보건소, 또는 보건지소의 기능이 공중보건과 의료의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도록 충분한 물적·인적보급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소요물량은 예산으로 조달될 수 있으나 요원의 확보는 의료 교육제도와 연관되므로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부문이다.
보사부가 마련 중인 극빈자 의료비 분납제도는 1차 적인 대상을 1백70만명으로 잡고 있어 상당수의 영세민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상환기한이나 대납 한도의 여하에 따라 실질혜택의 정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므로 요컨대 예산의 규모가 문제일 것이다.
이 제도만으로 혜택이 안 돌아가는 저소득 주민들에게는 정부가 보조하는 의료금고를 운영 하든가, 기타 지역별·직장별 조합운영을 정부가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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