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경제대국 꿈꾸는 인도네시아 "한국은 우리의 롤모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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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중부 깔리만탄주의 코이카 사업장

세계에서 4번째 인구(2억 5000만명)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성장잠재력이 높은 동남아시아의 맹주이자 G20의 회원국인 인도네시아의 꿈은 2030년 세계 5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되는 것이다. 세계 5강을 꿈꾸는 인도네시아가 롤모델로 삼은 것은 한국이다. 지난달 27일 만난 수마디라가 쿠르니아디 개발기획부(BAPPENAS) 차관은 “우리는 한국이 개발을 넘어 인적자원이나 사회문화 등을 새롭게 추구해 나가는 모습을 봐 왔다”며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변화해 나간다는 점에서 한국이야 말로 우리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1992년 한국의 무상원조기관 국제협력단(KOICA)가 처음으로 해외사무소를 개설한 곳도 인도네시아다. 사무소 개척 당시 30대 청년이었던 김병관 인도네시아 사무소장은 이제 완숙미가 넘치는 50대가 되서 현장으로 돌아왔다. 김 소장은 “인도네시아를 향한 원조는 가난을 벗어나는 원조가 아니라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에서의 협력”이라며 “원조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이제는 원조를 해주는 국가도 서로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이카 인도네시아 사무소 김병관 소장. 김 소장은 1989년 처음 인도네시아 사무소 개소 준비를 위해 인도네시아 근무한 적이 있다.

코이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무소는 ‘무상원조의 뉴욕 사무소’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과 함께 한국이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2년 개소한 인도네시아 사무소는 한국의 ODA 변화사를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다. 90년대 학교, 병원 등 기초 인프라를 지어주는 현물중심의 ODA 1.0부터, 2000년대 농업기술, IT교육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ODA 2.0을 거쳐, 2000년대 후반부터는 발전계획 수립이나 정부시스템의 개선 등 거버넌스 지원이 이뤄지는 ODA 3.0까지 모든 한국 ODA의 역사가 기록된 곳이다. 올해는 기업과 함께 고민하는 CSR사업도 8건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김 소장은 “정부 부처가 우리나라를 택해 공무원 연수를 하고, 전자정부 시스템을 배우는 등 한국 모델을 통해 인도네시아 전체의 구조개혁 및 시스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이야 말로 인도네시아가 한단계 도약하는 시점에서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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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1.0=‘청계천’ 모델삼은 찔리웅강

지난달 24일 찾은 찔리웅강은 자카르타의 젖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오염돼 있었다. 인도네시아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30년간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하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인 이스티크랄 사원을 휘감고 있었지만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스티크랄 사원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사원 주변 300m 구간을 한국 청계천을 롤모델로 삼아 변모시키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원을 굽이치며 감고 있는 하천 주변의 공사 가림막에는 서울 청계천의 모습이 빼곡히 프린트 되어 있었다. 코이카가 500만달러, 한국과 인도네시아 환경부가 각 200만달러씩 총 900만달러가 투자되는 이번 사업은 2015년 완공예정으로 인도네시아 코이카 단일사업으로 최대 규모다. 코이카 인도네시아 사무소 박미 부소장은 “자카르타 최대 관광지이자 영적 구심점인 사원 주변을 바꾼다면,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 제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전국 13개 주요강 개선사업에 1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국제협력단의 시범사업이 성공한다면 국내기업의 강 복원 사업 진출이 본격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인도네시아 합작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이스티크랄 사원 주변 찔리웅강. 청계천의 모습을 프린트 해놓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ODA 2.0=‘새마을 운동’ 바람부는 중부 깔리만탄

우리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에 대한 평가에는 부정적인 부분도 담겨 있다. 70년대 한국의 권위주의와 결합한 비민주적 개발발전 모델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새마을사업은 낙후된 농촌 지역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2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차량과 배, 오토바이를 갈아타고 도착한 2곳의 코이카 농촌지원사업 마을 까나미짜야와 쓰이삐뚜잉 주민들은 “아무것도 희망이 없던 마을이 새마을이라는 목표로 변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척박한 이탄토 토양 때문에 농사가 어려워 인근 군에서 가장 가난하고 노후했던 쓰이삐뚜잉 마을의 경우 지난 2011년 부터 2년간 시범 마을로 선정돼 농업,축산, 제빵, 재봉 등 기술을 배우며 주변마을의 부러움을 사는 곳으로 변모했다. 야지드 파미(34)씨는 “이전에는 가축이나 경작이 전무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 그대로 새마을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물카니(43)씨도 “가장 큰 희망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전에 없던 근면함이다. 땀흘린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배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삶도 달라졌다. 까나미짜야 마을의 슈프리요노(49)씨 “한국의 기술을 배우며 4헥타르의 고무농장의 하루 생산량이 15kg에서 25kg으로 증가했다. 17살, 12살, 5살 아들 모두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깔리만탄 주 투트 렐로 농업축산국장은 “2개 마을 모두 주변에 비해 월등히 소득이 향상되었다. 깔리만탄 주 내 다른 13개 군은 물론이고 전국의 농촌에 새마을 사업이 확대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이카 박종민 부소장은 “중부 깔리만탄에 2015년까지 대규모 농업교육센터를 구축하고 ‘고기잡는 법’을 대대적으로 전파할 방침”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중부 깔리만탄주 까나맛자야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이 코이카 농촌개발사업 후 바뀐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ODA 3.0=한국식 정부 시스템 구축하는 인니 뉴 거버넌스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부정부패와의 전쟁 중이다. 인도네시아 김영선 대사는 “인도네시아는 한단계 도약을 위해 내부 정비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이라며 “정부 혁신모델로 한국식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이카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정부혁신 역량강화 사업을 2차례에 걸쳐 추진하며 중앙정부 부처에 정부혁신 사례를 전수했다. 지난달 27일 행정개혁부에서 만난 루스디안토 수석고문은 “급속한 발전 속에서 안정된 거버넌스를 구축한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인도네시아에 적합하다”며 “정부 내 카르텔과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방식을 한국으로 부터 배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내의 관료주의나 행정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롤모델로 한국식 거버넌스가 주목받는 것이다. 대검찰청(AGO)의 브루하누딘 법무차관은 “인도네시아에서는 경찰과 부패척결위원회(KPK), 검찰 3가지 조직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한국을 통해 관료주의적인 기존 검찰을 혁신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거버넌스 지원은 부가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 내 친한파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공직자들의 모임인 ‘코이카 알룸나이’는 코이카를 통한 한국 연수를 다녀온 경험을 업무에 활용하며 동시에 한국 기업과 교민 등에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주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대검찰청(AGO)에서 코이카 연수에 참여했던 알룸나이들이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1주일간 둘러본 인도네시아는 말그대로 떠오르는 공룡이었다. 그리고 그 공룡에는 개발되지 않은 가난한 농촌마을의 모습부터 자카르타 도심 마천루의 화려함까지 용광로처럼 녹아 있었다. 코이카도 원조 1.0~3.0을 가리지 않고 발로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사무소 소장부터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인턴까지 규모는 작지만 강한 원조, 사람의 마음을 사는 원조를 코이카 현지 사무소는 꿈꾸고 있었다.

코이카 인도네시아 사무소가 개소 하기도 전인 91년에 인도네시아에 봉사단원으로 파견을 나왔던 김일태(51)씨는 “국제협력단원으로 일하며 인도네시아의 상중하를 모두 볼 수 있었다”며 “인도네시아에 정착해서 코이카가 20년이상 인도네시아와 하는 사업을 보면 현장 속에서 이곳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공존 발전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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